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마음의 감기는 배려의 대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감기에 걸린 사람은 주변의 도움과 배려의 대상이다. 누구나 걸릴 수 있으며 며칠 푹 쉬거나 간단한 치료로 증상이 곧 회복돼 정상 생활로 복귀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정신질환 가운데 우울증은 선진국에선 ‘마음의 감기’로 여겨 의학적 도움과 사회적 배려의 대상이다. 누구나 걸릴 수 있으며 대부분 가벼운 증세로 끝나 남에게 별 피해를 끼치지 않는 데다 치료만 받으면 80~90%가 개선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경증 환자가 110만 명이나 되며 최근 1년간 경험자가 전체 인구의 3.6%(세계 평균은 1%)나 될 정도로 흔하다. 그런데도 우울증 환자를 정도와 관계없이 법적·제도적·사회적으로 차별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정신보건법은 우울증을 조현병(정신분열증)이나 환청·망상 같은 심한 증세를 동반하는 다른 정신병과 똑같이 취급한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들은 아무리 정도가 가벼워도 면허증·자격증 취득과 공무원을 비롯한 각종 취업과 보험 가입 등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 중앙일보 10일자 보도에 따르면 법적 불이익만 77가지나 된다.

 이를 피하려고 의학적인 도움을 청하는 것조차 기피하는 경우가 많아 더 큰 사회적·의학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겐 별 피해를 주지 않는 우울증이 의학적·사회적으로 우려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살 시도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자살률이 인구 10만 명당 31.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것도 우울증 치료 회피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족들이 가슴을 칠 일이지만,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가운데 상당수가 정신과에서 약물·상담 치료를 잘 받았으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이야기다. 사실 한국의 전체 정신질환 치료율은 15.3%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환자가 불이익을 두려워한 나머지 의학적·사회적 도움을 받기는커녕 음지에 숨어 병을 키우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이번에 정신질환 법률을 손질해 우울증은 물론 공황장애·불안장애·불면증까지 증상이 가벼운 경우 법률상 정신질환자에서 제외하기로 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를 계기로 숨어있던 환자들이 양지로 나와 적절한 의학적인 도움을 받고 병을 고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가벼운 정신질환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이기도 하다. 미국에는 아예 정신질환자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신건강 동등취급법이 있으며 보험 등에서 구체적인 근거를 대지 않는 차별은 범죄로 처벌까지 한다. 이번 법률 손질을 계기로 한국도 법과 제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정신질환자를 차별하지 않고 치료와 자활을 돕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기대한다. 우울증을 비롯한 모든 경증 정신질환은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 치료와 보호의 대상이 돼야 마땅하다. 지금까지 암 투병 성공사례는 인간승리로 여기면서도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과 싸우는 환자들에게는 왜 그런 대접을 하지 못했는지 곰곰 생각해 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