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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칼럼] 통중봉북보다 통중통북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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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북한이 미국과 통하여 남한을 고립시키는 통미봉남(通美封南)의 시대는 가고 한국이 중국과 통하여 북한을 고립시키는 통중봉북(通中封北)의 시대가 왔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깜짝 발언이 진보와 보수 진영으로부터 비판의 협공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통일부 통일교육원 특강에서 칠판에 직접 “通中封北”이라고 쓰면서 이런 말을 했다. 청와대는 우리가 통중봉북 정책을 한다는 게 아니라 북한 입장에서 보면 중국이 북한을 제치고 한국과 가까이하는데 기분이 나쁠 것이라는 의미의 통중봉북이라고 해명을 했다.

 이 대통령 발언에 대한 비판의 초점은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느냐, 조금 좋아진 것처럼 보이는 한·중 관계에 대한 과신 아닌가, 그런 말은 중국의 입장만 어렵게 만든다는 데 맞춰졌다. 이런 비판적 물음에 대한 대답의 일부는 이 대통령의 특강에 나와 있다. “내가 4년간 후진타오와 열 번 이상 정상회담 하고 원자바오를 여섯 번 만났다. 김정일이 그들을 몇 번 만났나?” 중국 지도자들과의 여러 차례 회담이 우리 대통령을 고무시킨 것 같다.

 이 대통령은 중국이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갈망하고, 국방장관들이 만나기 시작했다는 점도 들었다. 고위 소식통은 한·중 FTA라는 경제동맹으로 미국의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희석시키는 것이 중국의 전략이고, 중국의 이런 태도가 최근 북·중 관계가 조금 소원해진 원인의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손해를 좀 보더라도 FTA로 한국을 묶어놓자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것이 발전하여 다음주 베이징 한·중·일 정상회담에서는 가급적 이른 시일 안에 한·중·일 FTA를 하자는 데 의견을 모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대통령이 고무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런 정부 간 관계만이 아니다. 최근 중국의 일부 한반도문제 전문가들의 글에서 중국의 한반도 전략 변화의 기미가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학자들의 숫자는 아직 많지 않지만 그들의 논조는 주목할 만하다. 그들 중 한 사람인 중앙당교(黨校)의 장롄구이(張璉<7470>) 교수는 홍콩에서 발행되어 2만 명 정도의 당·정부 간부들이 읽는 잡지 ‘영도자’ 2월호에 실린 논문에서 중국의 일부 인사들이 북한의 핵 보유는 미·중 관계에서 중국의 협상력을 높여준다고 보는 시각을 기회주의적이며 중대한 판단착오라고 비판했다. 그는 한반도 비핵화가 파괴되면 중국이 최대 피해자가 된다고 경고했다. 장롄구이는 사물의 변화는 영원하다는 마르크스의 말까지 인용하여 북한의 안정이 비핵화에 우선한다는 현상유지론을 중국의 근본 이익에 위배되는 생각이라고 공격했다.

 국가안전부 산하의 잡지 ‘현대국제관계’ 2월호에도 한반도 통일은 대세라고 전제하고 중국은 한반도 통일에 반대하는 정책을 통일에서 핵심 이익을 확보하는 정책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는 토론내용이 실렸다. 연변대학 진창이(金强一) 교수도 지린(吉林)대학이 발간하는 『동북아논단』에서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선호하는 중국의 시각을 비판하고 한반도 통일과 북핵문제 해결이 중국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학계의 이런 움직임들이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배경이다. 그러나 중국의 한반도 전략 변화는 아직은 우리의 희망사항이요, 가능성일 뿐 중국의 현실정책은 아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은 희망사항에 끌려 너무 앞서간다는 인상을 준다. 후진타오와의 여러 차례 만남을 통한 개인적인 친분관계에 무게를 둘 수도 있지만 올 연말 중국의 최고지도자는 시진핑으로 바뀐다. 이 대통령은 2008년에서 2012년 사이에 베이징을 여섯 번 방문했지만 한번도 시진핑을 만나지 않았다. 2009년 시진핑이 서울에 왔을 때도 이 대통령은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회의에 참석하러 가는 날 아침 짧은 조찬으로 끝냈다. 시진핑과의 개인적인 친분이 중요하다면 그걸 쌓는 것은 지금부터의 과제다.

 대통령의 발언이 근거 없는 건 아니지만 중국의 입장을 생각하면 대통령이 나서서 통중봉북을 말할 단계는 아니다. 정말 중국의 한반도 정책이 바뀔 낌새가 보이면 우리는 표정관리를 하면서 언행에 신중해야 한다. 통중을 거치든, 통미를 거치든 우리의 지향점은 북한과 통하는 통북(通北)이어야 한다. 통북이 아니면 지금 활기를 띠는 통일 논의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북한이 남북접촉을 거부하고 도발적인 자세를 계속하면 우리는 묵묵히 유사시 북한을 철저히 응징할 이중삼중의 태세만 갖추면 되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의 미사일 사정거리를 북한 전역으로 연장하는 한·미 미사일협정을 빨리 마무리하고, 군사정보 공유와 병참분야에서 한·일 안보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들이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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