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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 소년’일본 펀드 … 엔화 강세에 또 미끄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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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일본 주식시장이 10일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토픽스 지수는 0.4% 하락했다. 닛케이225지수는 최근 3개월 사이 최저치로 떨어졌다. [토쿄 로이터=뉴시스]

“일본 경제는 항공모함과 같다. 발진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이 4~5년 전 일본 주식시장에 대해 한 얘기다. 국내를 비롯해 중국·인도 등에 비해 왜 일본 증시가 부진한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투자자들은 매년 초 “예열을 끝내고 올해는 일본 경제가 발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연말이면 기대는 어김없이 어그러졌다.

 올해도 비슷한 양상으로 시장이 흘러가고 있다. 지난 1분기 일본 닛케이지수는 20% 가까이 올랐다. 24년 만에 최고의 1분기 상승률이다. 그간 부진을 면치 못하던 일본주식펀드는 이 기간 평균 15%를 웃도는 수익을 거뒀다. 그러나 지난달부터 상승세가 꺾였다. 10일에는 장중 닛케이지수 9000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2월 14일 이후 처음이다. 4월 한 달간 일본주식펀드는 -4.4%의 수익률로 지역별 해외주식펀드 가운데 브라질(-6.6%) 다음으로 부진했다.

 지난해에도 일본 증시는 ‘양치기 소년’이었다. 2010년 말부터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지난해 2월 닛케이지수는 1만 선을 돌파했다.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은 건 동일본 대지진이다. 한 달도 안 돼 지수를 1000포인트 넘게 내줬다. 최근 시장을 끌어내린 것은 유로존 위기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다시 안전자산을 찾기 시작했다. 엔화는 안전자산의 대명사다. 3월 중순 달러당 83엔을 웃돌던 엔화는 최근 80엔 선이 무너졌다. 10일 일본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엔화는 79.66엔을 기록했다.

 엔화 강세는 일본 경제에 악재다. 수출이 타격을 받는다. 수출 기업의 실적이 나빠지니 주가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흐름을 돌리기 위해 일본은행은 지난달 말 자산매입 프로그램 규모를 기존 65조 엔에서 70조 엔으로 확대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시장에 5조 엔만큼 더 돈을 풀겠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엔화 강세 기조와 증시 하락세를 막지 못했다. 신동석 삼성증권 연구원은 “이미 자산매입 확대에 대한 기대가 시장에 반영돼 왔고, 5조 엔 규모는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1%에 불과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유로존 위기가 진정되고 엔화가 약세로 돌아서면 일본 기업의 수출이 살아나면서 다시 시장이 반등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최대 일본펀드인 ‘프랭클린템플턴재팬주식펀드’의 운용을 맡은 데쓰로 미야키 프랭클린템플턴재팬인베스트먼트 총괄 매니저는 “일본 기업, 특히 기계장비 및 제조업 등의 글로벌 경쟁력은 여전히 강하다”며 “오히려 이들 기업이 ‘재팬 디스카운트’로 저평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9일 도요타는 올해 순익이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7600억 엔(약 10조9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투자자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5년 전 3조원이 넘었던 일본주식펀드 수탁액은 현재 계속되는 환매로 4000억원 수준까지 줄었다. 서동필 우리투자증권 자산관리컨설팅부 연구위원은 “글로벌 증시가 살아나더라도 일본 시장은 중국이나 미국 같은 핵심 국가가 아니다”며 “일본펀드 가입자라면 무작정 기다리기보다는 수익률 회복이 빠른 다른 펀드로 갈아타는 게 낫다”고 말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의 김다운 연구원은 “분산투자 차원에서 일본펀드에 신규 가입하겠다면 일단 유럽 위기가 일단락될 때까지 기다릴 것”을 당부했다.

 데쓰로 매니저는 그러나 “일본이 인구감소, 재정적자, 저성장 및 디플레이션 등 어려움에 직면해 있지만 일본 기업은 경쟁우위를 유지하고 있다”며 “이런 기업에 선별투자하는 펀드는 장기적으로 좋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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