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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부상’ 며느리들 지난한 인생 짐 덜어줄 길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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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어머니는 3년 넘게 암 투병을 했다. 수술, 방사선 치료, 항암치료, 재수술로 이어지는 지난한 나날이었다. 나는 생활을 책임져야 했기에 여동생이 간병을 도맡다시피 했다. 당시 대학생이던 동생은 학교 생활을 제대로 못했다. 착한 동생은 군말 없이 병원 생활을 견뎠지만 정신적·육체적으로 피폐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막상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쯤엔 모두 지쳐, 그 참담한 슬픔을 온전히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10년쯤 뒤, 이번엔 시어머님이 같은 고난에 들었다. 시댁 근처에 사는 두 동서가 번갈아 고생을 했다. 주말이면 시댁이 있는 경기도 안산으로 달려갔다. 내 딴엔 좀 쉬고 밀린 집안일도 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을 바치는 거였지만 마음은 늘 죄인이었다. 경제적 부담을 지는 것과는 별개로, 맏며느리라면 당연히 앞장서야 할 간병에서 한 발 비켜 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몇 달 전 오랜만에 병원에서 밤을 지새웠다. 아픈 아이 옆 보호자 침상에 몸을 누였다. 4인실 옆자리엔 노인 환자가 계셨는데 통증이 심한지 밤새 신음과 한탄이 이어졌다. 곁을 지키는 건 간병인 아주머니였다. 환자를 다독이느라 고생하는 아주머니가 안쓰러워 차 한 잔을 권했다. 아주머니는 “요즘엔 맞벌이가 늘어선지 간병인 쓰는 집이 많다. 근데 그걸 속상해하고 부끄럽게 여기는 어르신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긴 병에 걸려 봐야 자녀가 효자인지 알 수 있다’는 뜻이리라. 그만큼 부모 병구완은 전통적 효행의 기본으로 여겨져 왔다. 이를 남의 손에 맡기다니, 어르신들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시류가 이렇지만 지난 8일 어버이날 보건복지부가 표창한 효행자 27명 중 20명은 중풍·치매·암 같은 질환에 시달리는 시부모를 지극정성으로 봉양한 며느리들이었다. 사연만 들어도 가슴이 콱 막히는, 기막힌 삶을 살아온 이들이 많았다. 드문 만큼 더 큰 찬사와 위로를 받아 마땅하리라. 하나 한편으로는 사회 구성과 가족 관계, 가치관이 과거와 크게 달라진 지금도 100년, 200년 전과 다를 바 없는 기준으로 효부(孝婦)를 선정하고 이를 효행의 본으로 내세우는 것은 퇴행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번 표창의 대상이 된 며느리들 중에도 경제적 여유가 있거나 사회적 안전망이 보다 탄탄한 상황이었다면 기꺼이 지금과 다른 삶을 택했을 이들이 적지 않으리라.

 이미 우리나라의 노인 문제는 착한 며느리의 희생과 헌신으로 극복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 그간 고생한 효부들에게 진정 전할 것은 “계속 본을 보여달라”는 격려보다 “이젠 짐을 내려놓아도 된다”는 뜻의 실질적 지원책 아닐까. 간병휴직제도와 무료 간병인 서비스 확대 같은 것들이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나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