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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 러시아 권력의 형식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69호 29면

1917년 10월 혁명 이후의 소련·러시아 권력사에는 독특한 전통이 있다. 새로 권좌에 오른 인물이 자신을 키워준 전임자를 부정하고 짓밟는 배신 행위다. 배신은 죄가 아니라 권력의 한 형식이었다. 가장 큰 죄는 배신이 아니라 권력투쟁에서 패배하는 일이었다. 7일 러시아 대통령 자리에 4년 만에 복귀하는 블라디미르 푸틴도 전임자 부정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90년대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 총리가 된 푸틴은 99년 12월 31일 옐친의 사임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고 옐친의 낙점으로 후계자로 지명됐다. 이듬해 대선에서 승리한 데 이어 재선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옐친을 철저히 부정했다. 대통령 자리만 물려받았을 뿐 정책과 인물은 내팽개쳤다. 옐친 추종자들을 숙청한 자리에 자신의 심복들을 앉혔다. 정치적 자유와 시장경제 확대를 추진하던 옐친의 정책을 철저히 짓밟았다. 대신 권위주의 시대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렸다.

사실 옐친도 할 말이 없다. 과거 자신을 정치국원으로 밀어줬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91년 보수파의 쿠데타로 정치적 위기에 처하자 그를 돕기는커녕 되레 이런 상황을 이용해 러시아를 소련에서 분리시켜 대통령 자리를 꿰찼기 때문이다. 옐친의 배신은 소련 해체와 고르바초프의 몰락을 재촉했다. 고르바초프가 가장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시점에 옐친은 등 뒤에서 배신의 칼날을 꽂았다.

소련을 18년간 이끌었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는 더했다. 33년간 정치적 스승이었던 니키타 흐루쇼프를 최고 지도자 자리에서 쫓아내고 권좌에 앉았다. 지방 당료였던 브레즈네프를 발탁해 몰다비아와 카자흐스탄 당서기 경력을 쌓게 한 뒤 중앙정치무대로 불러들인 게 흐루쇼프였다. 공산당 서기장이 된 흐루쇼프는 브레즈네프를 2인자인 제2서기로 발탁했다. 하지만 브레즈네프는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64년 10월 14일 흐루쇼프가 휴가를 간 사이 공산당 정치국 회의를 열어 배신자들을 규합해 해임안을 가결했다.

이오시프 스탈린이 살았을 때 입속의 혀처럼 굴었던 동향의 정보책임자 라브렌티 베리야도 53년 스탈린이 뇌출혈로 죽어가자 얼굴에 침을 뱉었다고 한다. 하기야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이 사망한 뒤 스탈린도 레닌의 혁명 동지들을 하나하나 제거하며 권력 기반을 구축했다. 배신의 원조 격이다.

7일 세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는 푸틴은 2000년부터 4년 임기의 대통령을 두 차례 지냈다. 그는 3연임을 금지하는 헌법 때문에 그 자리를 심복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에게 사실상 물려줬다. 그러면서 4년간 실세 총리를 지냈지만 후임자에게 부정당하지 않고, 대통령 자리로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아직까지는 행운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권좌에 오른 소련·러시아 지도자 가운데 푸틴은 후임자에게 짓밟히지 않은 첫 인물이자 전임자를 배신한 마지막 권력자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도통 알 수 없는 게 권력이다. 4년 뒤, 아니면 8년 뒤의 후임자도 메드베데프처럼 순진하게 푸틴을 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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