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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병 부리지 마” 무시하면 더 심해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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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호 18면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질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건강염려증’ 환자가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05년 1만2000여 명에 불과했던 건강염려증 환자는 2007년 1만5000여 명으로 늘었고, 2008년엔 2만 명에 달하는 등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병원을 찾는 사람 중 4~5%는 건강염려증 환자에 속한다고 한다. 특히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는 40~50대에 많이 나타난다. 건강에 관심을 갖고 관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건강염려증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순천향대 가정의학과 유병욱(사진) 교수에게 건강염려증에 대해 들어 봤다.

순천향대병원 가정의학과 유병욱 교수에게 듣는 건강염려증

-건강염려증이 뭔가.
“사소한 신체 변화나 징후를 과도하게 해석해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6개월 이상 지속되면 건강염려증으로 볼 수 있다. 의사에게 진단을 받고 정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믿지 못하고, 혼자 현대 의학으로 찾아야 할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예컨대 소화 중에 생기는 정상적인 꼬르륵 소리나 땀, 피부 증상 등을 근거로 암에 걸렸다고 믿고 암에 대해 연구하면서 자신이 암 환자라고 믿는 경우도 있다.”

-그럼 정신 질환에 속하는 건가.
“건강염려증은 건강보험의 질병 분류 코드에도 등록된 공식 병명이다. 강박장애의 일종으로 정신 장애 불안에 속한다.”

-특징과 증상은.
“100% 개별화돼 있다. 강박장애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난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망상이나 공포심을 갖는다.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소화불량·두통·기침·설사·식은땀 등의 증세를 확대 해석해 암이라고 믿으면 통증이 없어도 당사자는 통증을 느끼는 정신신체화장애를 겪기도 한다. 신체 망상 수준으로 발전하면 우울증이 동반된다. 병원을 찾아 정상이라는 확인을 받은 직후에는 마음을 놓지만 금세 또 다른 질병으로 의심하기를 반복한다. 정상적인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낄 정도로 건강정보와 병에 집착한다. 건강기능식품이나 출처가 불명확한 치료제에 의존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에게 많이 생기나, 원인은.
“지식 수준이 높은 고학력자나 경제적으로 안정된 40~50대에게 많이 나타난다. 중년에 이르러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감소하면 지나친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신체적 피로,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무의식적인 마음 등이 그 원인이 된다. 가족이나 친지가 유방암·폐암 등으로 사망하거나 돌연사하면 트라우마가 생겨 건강염려증으로 심화되기도 한다.”

-과거와는 양상이 달라졌다던데.
“건강염려증은 의학이 시작된 그리스 시대부터 있어왔던 병이다. 과거에는 전문가를 만나는 일 이외에는 건강정보를 얻기가 힘들어 에이즈 환자와 손을 잡으면 에이즈에 걸린다거나 배가 쿡쿡 쑤시듯 아프면 대장암이라는 식으로 실체가 없고 구체적이지 않은 막연한 공포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의학정보를 접하는 통로가 넓어지면서 건강염려증이 더 심각해졌다. 진료를 받을 때 이미 학습한 의학정보를 자신의 증상인 양 말하기 때문에 의사들조차 건강염려증 환자를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예컨대 자신이 중풍이라고 여기는 건강염려증 환자가 병원을 찾아 자신이 겪고 있는 중풍의 증상을 교과서대로 세밀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 멀쩡하다. 환자의 이야기만 듣고는 중풍 환자로 오해하게 되는 것이다.”

-꾀병과도 비슷해 보인다.
“건강염려증 환자는 한두 가지의 질환을 집중적으로 호소하는 경향이 있다. 또 병의 증상보다는 결과에 집착한다. ‘머리가 아프다’가 아니라 ‘머리가 아픈 걸 보니 뇌중풍이다’라고 하는 식이다. 의사가 말려도 우겨서 수술을 받고야 마는 환자도 있다. 대체적으로 닥터쇼핑을 자주 한다. 의사의 설명을 믿지 않고 자신의 증상을 길고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의사의 조언을 답답해하는 경향이 있다. 또 자신이 충분한 치료를 받고 있지 못하다고 믿는다. 의사가 자신이 생각하는 병을 말하지 않으면 오진(誤診)이라며 무시한다.”

-방치하면 어떻게 되나.
“닥터쇼핑을 하면서 쓰는 시간과 돈도 낭비지만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정말 병이 커진다는 것이다. 병을 찾지 못해 우울증이 생기기도 한다. 심한 경우 망상장애로 이어진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경우 병원에서 받은 약을 전부 복용하기 때문에 비슷한 종류의 약을 과다 복용해 부작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가 진단으로 흔하게 구입할 수 있는 소염제를 의사의 처방 없이 장기간 복용하면 위궤양이 발생할 수 있다.”

-치료는 어떻게 하나.
“우울증과 불안장애, 정신병을 함께 가진 경우가 있어 항우울제나 항불안제를 복용한다. 약물치료만으로도 30~50% 증세가 좋아진다. 내과 또는 외과 치료를 병행하기도 한다. 인지행동치료도 효과가 있다. 환자의 증상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스트레스·불안·우울증이 증상을 어떻게 심화시키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상담하는 방식이다. 상황을 악화시키는 불안을 완화시키는 행동과 기분전환·긴장이완 방법 등을 알려준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
“건강염려증 환자는 가족들에게 언뜻 꾀병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환자는 자신이 아프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가족이 무시하면 증상은 오히려 심해진다.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병원에 갈 때도 가족이 동행해 치료 과정을 함께하는 것이 좋다. 의사의 말을 가족이 다시 한번 객관적으로 정리해 막연한 두려움이나 걱정을 떨치도록 도와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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