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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한 투자로 월드캐릭터 창조

중앙일보

입력

일본의 관문 나리타 공항. 토산품점과 식당이 늘어선 풍경은 여느 공항이나 다를 바 없는데 유독 여행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곳이 하나 있다. 온통 노란색으로 치장한 '포켓몬스터(포케몬)' 캐릭터 숍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포켓몬'에 등장하는 인기 캐릭터인 '피카추'인형에서부터 카드·학용품까지, '포케몬'에 열광하는 아이들을 흥분시킬 만한 캐릭터상품으로 가득하다.

이 상점에만 들어서면 지갑이 어느새 얇아진다. 일본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애니메이션 산업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실감케 하는 공간이다.

▶ 황금알을 낳는 거위, 캐릭터산업

캐릭터산업은 애니메이션이 창출하는 가장 큰 부가산업이다. 순수 창작 캐릭터도 물론 있지만 캐릭터 산업의 대부분은 인기 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한다.

특히 일본은 '도라이몽'(동짜몽.1979년), '이웃의 토토로'(88년), '포케몬'(99년)등 TV나 극장에서 대성공을 거둔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캐릭터산업의 덩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일본 캐릭터 시장의 규모는 98년에 이미 3조엔(약 30조원)을 기록했다. 5천억원으로 추정되는 한국 시장에 비하면 무려 60배나 되는 셈이다.

게다가 국내 캐릭터산업의 80% 이상이 해외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채워지는 반면 일본은 포케몬이 등장하기도 전에 이미 해외에서 로열티로 한 해에 1천2백억엔(1조2천억원)을 거둬들였다. 제작비 대비 수익을 생각하면 캐릭터는 어떤 산업보다 수익성 높은 비즈니스임이 분명하다.

영화·음반 등 다른 문화산업도 비슷하지만 특히 애니메이션은 영원히 늙지 않는 캐릭터를 통해 몇 년, 혹은 몇십년 동안 수익을 안겨다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이처럼 애니메이션은 작은 돈으로 큰 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보니 아예 캐릭터를 염두에 두고 제작하는 경우도 있다.

게임을 거쳐 TV·영화로 영역을 확장한 포케몬이나 TV애니메이션 '팅코'가 그런 예다. 팅코를 배급하는 소니의 자회사 SPE비주얼워크스의 시라카와 류조 대표는 "기존의 캐릭터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면 파급력이 더 커진다" 며 "팅코도 원래 한 회사의 초콜릿 포장지의 캐릭터에 불과했지만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한다.

반면 스튜디오 지브리의 해외 판권을 관리하는 도쿠마 인터내셔널의 스티븐 앨퍼트 대표는 "'이웃의 토토로'는 처음부터 캐릭터를 생각하고 만든 작품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지브리에 엄청난 돈을 가져다줬다"며 "어린이에게 꿈을 줄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야 성공이 따라온다"고 말한다.

어떤 경우든 잘 만든 애니메이션 한 편이 엄청난 돈을 끌어들이는 것만은 사실이다.

▶ 하드웨어 개발도 애니메이션의 수요를 창출한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의 경우 캐릭터사업이 수익의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인랑'처럼 성인을 대상으로 한 사실적인 성향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경우 캐릭터사업은 거의 불가능하다. 제작비는 어린이용 TV 애니메이션의 열 배 이상 들지만 정작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길은 별로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실사영화처럼 극장 흥행에만 목을 매는 것은 아니다. 설령 극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더라도 웬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으면 최소한 제작비는 뽑는다. 그 비밀은 비디오 시장에 있다.

대여점 외에는 별다른 비디오 판매 경로가 없는 국내와 달리 일본은 애니메이션 매니어를 중심으로 소장용 비디오 시장이 형성돼 있다. 게다가 VHS·LD·DVD 등 새로운 플레이어가 개발될 때마다 이미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라도 새로 구입하기 때문에 늘 새로운 수요가 창출된다.

애니메이션 투자·배급사인 반다이 비주얼의 99년 비디오 관련 매출 1백90억엔 중 80%가 DVD에서 나왔다는 사실에서도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반다이 비주얼 영상사업본부의 노지리 마모루 과장은 "일본에서 10만명이 들었던 '인랑'의 경우 비디오와 DVD를 각각 2만5천개 출시했다"며 "당장은 투자비를 뽑기 어려워도 몇 년 지나면 이익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단 한 편의 작품이 시대에 따라 탈바꿈하며 생명력을 유지해가는 일본 애니메이션 비디오시장의 단면을 확인해주는 대목이다.

▶ 한탕주의는 없다

애니메이션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사실을 국내 업계 관계자들도 잘 알고 있다. 90년대 몇몇 작품이 극장 개봉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마인드를 가진 투자자가 돈을 댔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와 일본 투자자는 큰 차이를 보인다.

제작기간과 제작비용이 예상을 넘어서거나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결과가 나와도 일본 투자자들은 별로 조급해하지 않는다. 짧게는 3~4년, 길게는 10년이 지나야 비로소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흥행에 실패한다 해도 손을 털고 업계를 떠나지 않고 안정적인 투자구조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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