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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은행 완전감자 배경과 파장]

중앙일보

입력

정부가 6개 부실은행의 자본금을 전액 소각하고 연내에 필요한 공적자금을 조기 투입키로 결정함에 따라 우량은행간 자율합병과 함께 2단계 은행구조조정의 다른 한 축을 맡고 있는 부실은행 금융지주회사 편입작업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우량은행간 자율합병이 노조측의 반발에 맞닥뜨려 다소 삐걱대고는 있지만 부실은행의 클린화와 정부 주도 지주회사 편입구도가 가시화함에 따라 국내 은행산업은 대형화 및 경쟁력 강화라는 시대적 조류를 거스를 수 없게 됐다.

이번 조치로 인해 이미 부실은행에 출자됐던 공적자금 8조3천억원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 데다 신규로 약 7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돼 '국민 혈세'를 쏟아 붓는 이같은 방식의 구조조정이 최선인가 하는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다.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실은행 구조조정시 감자는 없다"고 공언해 온 정책 당국자들의 ` 식언'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가중되고 직접적인 피해자가 발생, 구조조정 작업이 오히려 강력한 저항에 부닥치게 됐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정부의 `읍참마속'격 감자 결정= 이번에 완전감자 조치를 받은 6개 은행 가운데 이미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 지분을 갖고 있는 은행은 한빛, 서울, 평화은행으로 이들 3개 은행에 출자된 자금은 8조3천억원에 이른다.

정부는 한빛, 서울, 평화은행을 포함해 6개 부실은행의 자본을 완전 소각할 경우 기존 출자분이 모두 '휴지조각'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은행구조조정의 성공을 위해 완전감자를 결정했다.

재산실사 결과 6개 은행 모두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고 있고 자체 경영정상화가 불가능해 공적자금 투입을 요청한 마당에 자본의 일부라도 남겨둘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존 출자분을 날리더라도 부실을 완전히 해소, 클린뱅크를 만든 뒤 정부 주도 금융지주회사로 출발하는 편이 경쟁력을 높이고 오히려 향후 경영성과에 따라 주가가 오르면 기존 출자분의 일부라도 회수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소액주주와 순수 투자자 피해 심각= 정부가 6개 은행의 완전감자를 결정하기까지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근로자 주주가 대부분인 평화은행과 제주은행 등 지역주민이 자본금 형성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은행이었다.

이들 소액주주는 '충정'을 갖고 근로자 은행, 지역은행에 출자한 것일 뿐 경영에 참여하거나 주주로서 경영진 견제에 적극 나설 수 없었기 때문에 부실화의 책임을 지고 재산을 날릴 처지는 못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소액주주 지분에 대해서는 차등소각을 하자는 견해도 없지 않았지만 정부는 '주주간 형평' 원칙에 따라 완전감자 조치를 하게 됐다.

다만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에 따른 주식매수청구권을 인정,이번 조치에 반대하는 주주들에게 보유주식을 매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했지만 피해는 불가피하다.

평화은행의 근로자 주주, 지방은행의 지역주민 주주와는 사정이 다른게 정책 당국자들의 "공적자금 투입은행 감자는 없다" 발언을 믿고 투자한 주식 투자자들이다.

정책 당국자들의 식언으로 정부의 신인도는 더욱 추락하게 됐고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을 날리게 된 투자자들이 법적투쟁 등 조직적으로 반발할 때 2단계 금융구조조정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주식매수청구권은 어떻게 행사되나= 상법상 주식매수청구권은 합병, 회사분할,영업양도의 경우 주주에게 주어지는 권리지만 금산법에는 정부가 부실금융기관을 지정하고 자본을 감소시킬 때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매수청구권 행사자는 기존주주라면 제한이 없기 때문에 이번 경우 정부 대주주만 매수청구권을 포기할 뿐 나머지 대주주 및 소액주주들은 모두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전망이다.

이사회 의결(자본감소) 사항에 반대하는 주주는 이사회로부터 10일 이내에 매수 청구권을 행사해야 하고 해당 금융기관은 2개월 이내에 매수청구된 주식을 매입해야 한다.

매수청구가격 결정은 1차로 해당 금융기관과 주주간 협의가 우선되고 이견이 있을 경우 공적자금 투입 전 부실금융기관의 재산가치, 수익가치에 따라 결정된다.

◇기존주주와 노조 반발 불가피= 정부는 6개 은행에 대해 가급적 이달 안에 완전감자-공적자금 투입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지만 기존주주와 해당 은행 노조,나아가 금융산업노조의 조직적인 반발이 예상돼 계획대로 될 지는 미지수다.

기존주주는 특히 9월말 현재 자기자본이 납입자본의 50% 가까이 남아있는 것으로 집계됐던 한빛은행이 불과 2개월 여만에 완전감자 조치를 받은데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들이 은행과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을 상대로 분식회계 여부를 따지거나 금융감독원에 대해 부실검사 여부를 따지면서 소송을 제기할 경우 문제가 복잡해 진다.

정기국회에서 제정된 `공적자금 관리법'에 따르면 공적자금 투입시 부실금융기관과 정부가 체결하는 계약(MOU)에 노조의 동의가 의무사항이라는 점도 복병으로 여겨진다.

정부 주도의 강제적 구조조정에 반발하는 노조는 특히 우리사주 주주이기도 하기 때문에 완전감자-공적자금 투입에 동의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서울=연합뉴스) 김영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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