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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그라 주세요" 민망했던 환자들, 이제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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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윤성태 휴온스 부회장은 ‘고비를 넘기면 희망이 있다’는 편지로 임직원의 마음을 얻어 위기를 이겨냈다. 지난해 매출 1000억원을 넘긴 그는 2020년 매출 1조원이 넘는 종합 헬스케어 기업을 꿈꾸고 있다. [안성식 기자]

대체로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어차피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이상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목표지점은 점점 변경되기 일쑤다. 어떤 경우에는 전혀 원하지 않는 곳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 기도 한다.

 윤성태(48) 휴온스 부회장의 인생도 원래는 제약산업과 거리가 멀었다. 한양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IBM에 들어갔으니 보통사람들의 생각에는 고액 연봉의 월급쟁이 인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매출 1000억원대의 제약회사 오너다. 최근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판교이노밸리 본사에서 만난 윤 부회장은 “부친이 경영하던 조그만 제약회사가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 생각도 못했다”면서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찾아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휴온스는 지난해 매출이 처음 1000억원 고지를 넘어선 1131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80억원으로 꽤 쏠쏠한 편이다. 치과 등에서 쓰이는 국소마취제 주사제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또 일회용 무방부제 인공눈물, 관절염치료제를 비롯해 비만치료제와 같은 웰빙 의약품으로 점차 시장을 넓히는 중이다.

 윤 부회장이 1989년 한국IBM 기술부에 입사한 뒤 개발업무를 담당하다가 갑작스레 부친(윤상용, 1997년 작고)의 호출을 받은 건 1992년이었다. “한국IBM은 그 당시 최고의 직장이었습니다. 연봉도 2500만원에 달해 최고 수준이었고 주5일 근무가 가능했죠. 그런데 아버님이 부르시니 안 갈 수도 없고 난감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대리로 입사했는데 연봉이 매달 100만원에 보너스 합해서 1400만원으로 깎이더군요.”

 그러나 이런 푸념을 늘어놓을 때가 아니었다. 1965년 성남에서 광명약품공업사를 연 부친이 아들을 호출했을 당시 공장을 짓기 시작했는데, 50억원이 예상됐던 공장 건설에 80억원까지 들어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매출이 20억원 정도였으니 무리를 한 셈이었다. 20억원의 매출 가운데 8000만∼9000만원이 이자로 나갔다. 위기였다. 자칫하면 살고 있던 집도 채권단에 내어줄 판이었다. 부친은 94년 시름 끝에 찾아간 병원에서 암 선고를 받았고, 그로부터 3년 뒤 세상을 떴다. 부친이 없는 회사는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1998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장에 화재가 발생했다. 백척간두의 위기상황이었다. 일단 60여 명의 직원부터 끌어안아야 했다. 소통 이외에는 별다른 해법이 없었다.

 “만기가 돌아오는 어음을 막는 데 3∼4년을 소비했습니다. 한때는 정말 눈앞이 캄캄했고 망하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에 절망감에 빠졌죠. 그래도 믿을 건 직원들밖에 없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직원들과 소통에 주력했다. 회사에 대한 비전을 밝히고 ‘고비를 넘기면 희망이 있다’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우선 경영성과를 있는 그대로 알렸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 사이에 ‘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하게 출장 간 예멘에서 회생의 기회를 잡았다. 직원들에게 공언한 경영실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내보다는 해외로 나가야 했다. 윤 부회장은 예멘에서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주사제를 보고 무릎을 쳤다. “바로 이거다.” 생산 중인 주사제의 원가를 낮춰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차에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증류수 앰풀이 눈에 확 들어온 것이다. 그동안 주사제 용기는 유리로 제작돼 뚜껑을 딸 때 간호사들이 손을 베거나 유리가루가 주사제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휴온스가 내놓은 플라스틱 용기 주사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유리에 담긴 주사제를 플라스틱 용기에 담기 시작했다. 시중 병원에서 반응이 예상을 뛰어넘으면서 월 5000만원 하던 매출이 월 2억원까지 올랐다. 원가는 3분의 1로 줄었으니 이런 ‘대박’이 따로 없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윤 부회장에게 어울린다. 플라스틱 주사제 앰풀 매출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할 무렵 한 병원을 통해 자체 개발한 비타민C 메가도스 주사제 수요가 증가하며 기업이 점차 정상궤도에 진입했다. 그 병원을 주로 드나들던 영업사원이 암환자 병동에서 간호사들이 여러 개의 비타민 주사제를 개봉해서 하나로 합친 다음 말기 암환자에게 주사하는 모습을 보고 뇌리를 스친 아이디어였다. 윤 부회장은 간호사들이 일일이 여러 개의 앰풀을 개봉할 필요 없이 20∼30g의 비타민C를 한데 모은 메가도스 주사제를 개발한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휴온스의 강점에 대해 스피드 경영을 자주 거론합니다. 우리는 다국적 제약사들이 생각지 못한 틈새시장을 뚫어 경쟁사보다 빠르게 진입하는 게 목표입니다.”

 한국IBM 출신답게 정보기술(IT)과 바이오기술(BT)을 접목하려는 움직임도 남다르다. 단적인 예가 2002년 도입한 화상회의다. 전국에 자리 잡은 영업본부 사무실과 화상회의가 매일 아침 연결된다. 연구소에도 화상회의 시스템이 설치돼 윤 부회장이 해외 출장 중일 때도 연구개발(R&D) 현황을 영상을 통해 보고받는다. 일찌감치 IT와 BT의 융합에 눈을 뜬 것이다.

 윤 부회장은 2003년 3월 사명을 ‘휴온스’로 바꿨다. 휴온스(Huons)는 ‘인간(Human)’과 ‘치료(Medication)’ ‘해법(Solution)’의 합성어다. 그에게 “부친이 살아계셨다면 사명 변경을 허락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대답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광명제약까지는 가능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 세계 40여 개국으로 수출 길을 뚫으면서 2006년 12월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다.

 휴온스의 강점은 틈새시장을 골라낸 다음 고속성장을 한다는 점이다. 충북 제천에 무리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지은 공장 덕분이다. 윤 부회장은 “매출이 600억원 하던 시절에 513억원 이상을 투자해 세계에서 가장 앞선 수준의 공장을 지었는데 주변에서 무모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면서 “코스닥 상장에 성공해 자금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이 같은 공장을 지을 생각은 꿈에도 못했을 것”이라며 크게 웃었다.

 2009년 공장을 완공한 뒤 한동안 공장을 정상화하는 데 꽤 애를 먹었다. 괜한 돈을 들였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니까 손발이 맞기 시작했다. 동아제약을 비롯한 30여 군데의 국내 제약사에서 생산을 대신해 달라는 CMO 계약이 밀려들었다. 해외에서도 휴온스의 설비를 이용했다고 하면 별다른 지적 없이 수출심사가 통과됐다.

 윤 부회장의 또 다른 장점은 ‘오픈 마인드’다. 평소 네트워크를 쌓아둔 대학교수들의 연구성과물 6∼7개를 사들여 천연물 신약 특허를 내놓았다. 파킨슨병에 대한 천연물 신약은 현재 서울대병원 등에서 임상시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다. 패혈증 치료제에 대한 임상시험 허가도 기다리는 상태다.

 윤 부회장은 현재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 복제약에 기대를 걸고 있다. 5월이면 특허기간이 만료되는 비아그라를 복제는 하되 알약 형태가 아니라 필름 형태로 만들었다. 필름 형태는 물 없이도 복용할 수 있고 휴대하는 데 편리하다는 이점이 있다. 비아그라를 복제하는 대부분의 제약사들이 원초적인 이름을 짓는 데 비해 윤 부회장은 이 제품에 ‘프리스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환자들이 의사들에게 난처한 이름을 대기보다 평범한 이름을 대면 덜 쑥스러울 수 있다는 데 착안했다.

 윤 부회장은 이처럼 연구개발비가 턱없이 많이 들어가는 신약 대신 성인병 퇴치에 적합한 웰빙 의약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천연물 신약 가운데 기대 이상의 ‘대박’을 안겨준 웰빙 의약품이 비만치료제 ‘살사라진’이다. 국내 학회에서 우연히 만난 게 계기가 됐다. 상표명에서 오는 이미지에 따라 연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안겨주고 있다. 윤 부회장은 5월 말 새로운 형태의 비만약 ‘알룬정’을 출시할 계획이다. 이 약을 먹으면 위 안에서 급격히 팽창해 복부 팽만감을 일으키면서 음식을 덜 먹어도 되는 상태에 다다른다. 미역에 들어간 성분이 포함된 것으로, 위에 들어가면 원래 부피의 40배 정도로 팽창한다.

  윤 부회장은 2020년 매출 1조원의 종합 헬스케어 기업을 꿈꾸고 있다. 성형제품으로 많이 쓰이는 하이알루론산 제형을 개발한 것도 이 같은 비전의 연장선이다. 이와 함께 피부과에서 주로 쓰이는 의료기기와 화장품 사업에 손을 뻗치고 있다.

 그는 “정부가 약가를 일률적으로 인하하면서 업계가 큰 타격을 받았지만 우리는 다르다”면서 “남들이 생각지 못한 틈새시장을 골라 집중적으로 육성한다면 다국적 제약사와 한판 대결도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휴온스=윤성태(48) 부회장의 부친인 고 윤상용(1997년 작고)씨가 1965년 설립한 광명약품공업사가 전신이다. 79년 국소 마취제 ‘리도카인’을, 98년에는 플라스틱 용기 주사제를 국내 처음 개발했다. 2003년 휴온스로 사명을 변경했고, 2004년에 5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했다. 지난해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섰다. 국내 국소마취제 주사제 시장의 60% 정도를 점유하고 있으며, 비만치료제와 같은 웰빙 의약품 시장에도 진출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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