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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철학자 눈으로 애니 통찰 〈미녀와 야수, 그리고 인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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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의 여주인공은 금발인가, 흑발인가.

램프의 요정 '지니' 야말로 〈알라딘〉의 진짜 주인공이 아닐까. 너무 사소한 질문일까. 하지만 신간 〈미녀와 야수, 그리고 인간〉에선 바로 이런 물음들이 서구인의 의식구조까지 더듬게 만드는 철학적 사유의 중요한 고리로 작용한다.

독자들은 일단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르겠다.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이 그림이나 음악 등 기술적인 면이나 잘 짜여진 시나리오로 어른들까지 감탄케 할 정도지만, 기본 서사구조는 동화나 민담의 권선징악적 구조를 얼마나 벗어났느냐는 의심 한자락 때문일게다.

그러나 저자는 1990년대 초반의 디즈니 작품들 속에서 현대 산업사회적 서사구조와 함께 서양 철학사를 망라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발견해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철학을 쉽게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서 디즈니의 작품들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철학이 작품 감상에 '봉사' 하는 서술방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같은 대상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도록 철학적 관점을 제시한다는 것,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21세기적 문화향유' 가 저자의 첫째 의도이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의 어원을 따지는 등 가벼운 읽을거리를 덧붙인 것도 독자에 다가서기 위한 장치다.

〈미녀와 야수〉부터 보자. 이 영화의 기둥 줄거리는 '사랑의 마음이 없다' 는 이유로 마법에 걸려 야수가 된 왕자가 벨과 만나면서 사랑을 주고 받는 법을 '배우게' 돼 마침내 마법에서 풀려난다는 것.

흔한 얘기지만 저자는 우선 마법에 걸린 대상이 공주가 아닌 왕자이며 남녀 주인공이 첫눈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과 충돌로 만남을 시작한다는 점을 보며 '탈중세적 특징' 을 발견한다.

또 벨이 금발이 아닌 짙은 갈색이며, 책을 좋아한다는 점은 사회적인 미의 기준과 여성적 매력이 바뀌고 있음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인물구조는 보다 철학적 사유를 발전시킨다. 야수의 신하들인 루미에(촛대)와 콕스워스(시계)를 대립적이면서도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변증법적 구조의 인물들로 해석하면서, 벨의 등장이 이들의 갈등을 표면화시켜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역할을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야수 역시 무자비 대 자비, 무관심 대 사랑이라는 내부적 대립요소를 지녔으며, 사랑을 모르는 비극적 정체성을 흉칙한 외모에 드러낸 인물로 보면서 이 작품은 야수가 이러한 갈등구조를 극복하고 헤겔적인 자아완성에 이르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저자는 〈알라딘〉에서는 '자유와 진리' 의 문제를, 〈라이언 킹〉에서는 정체성과 개인성의 의미를 논한다. 또 〈인어 공주〉에서는 인간성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욕망과 그 실현의 문제를 분석한다.

어찌보면 '꿈보다 나은 해몽' 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정작 아이들보다 어른 관객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인문학적 담론 대상으로서는 찬밥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로 보인다.

기껏 미국 제국주의적 내용 등을 비판할 게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들조차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을, 그 속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체화돼 있는 서구인들의 의식구조를 읽어보면서 인문학적 담론을 활발히 하자는 것이 바로 저자의 또 다른 의도다.

그것이야말로 소위 '인문학의 위기' 를 벗어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 3위의 애니메이션 생산대국이면서도 시나리오 부실로 대부분 미국.일본의 주문 제작인, "머리는 없고 손발만 있는 기형적 모습" 의 한국 현실에서 이 책은 주접 떠는 현학 취미일까, 아니면 새겨들어야 할 얘기일까.
〈미녀와 야수, 그리고 인간〉 김용석 지음, 푸른숲,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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