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 헤리티지] 수필집 『셰프의 딸』 펴낸 요리사 나카가와 히데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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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나카가와 히데코가 안고 있는 냄비, 프라이팬, 차 주전자 등은 프랑스 음식 전문 요리사였던 아버지가 30~40년 동안 쓰던 것들이다. 표면은 거칠고 낡았지만 히데코에겐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물건들이다.

『셰프의 딸』의 저자인 요리사 나카가와 히데코(45)는 한국 생활 17년째인 일본 태생 귀화 한국인이다. 한국 이름은 중천수자. 현재 서울 연희동에 있는 단독주택에서 남편 박병진(46·회사원)씨, 두 아들 정훈(15)·지훈(13)과 살며 요리 교실 ‘구르메 레브쿠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초 그의 주방에 살림살이가 갑자기 늘었다. 일본의 친정에서 싸들고 온 요리 도구들 때문이다. 한눈에 봐도 낡고 오래된 것들이다.

 “아버지가 30~40년 동안 쓰셨던 도구들이에요.” 히데코의 아버지 나카가와 다모쓰(79)는 프랑스 음식 전문 요리사다. 열여덟 살이던 1952년 도쿄 임페리얼 호텔(구 제국호텔)에서 요리 수업을 받고 지난해 말까지 꼬박 60여 년간 현역으로 일했다. 이쯤 되면 아버지의 대를 이어 요리사가 되고, 그 아버지의 요리 도구까지 물려받은 ‘대견스러운 딸’ 이야기가 이어져야 자연스러운데 그렇지가 않다. 히데코는 자신을 “‘셰프의 딸’이 되지 않기 위해 25년을 도망쳐 다녔던 청개구리”라고 소개했다.

 히데코는 반항기 가득했던 고교 시절 내내 “아버지를 미워했노라”고 했다. “하얀 요리사복이 너무 싫었어요. 양복입고 출근하는 친구들의 아버지처럼 평범한 생활을 하지 못했으니까요. 주말이면 식당으로 출근해야 했던 아버지 때문에 어린 시절 주말의 가족 소풍 같은 기억이 거의 없어요. 도시(일본 니가타시)에서 두 시간이나 떨어진 외딴 사도섬에서 사춘기를 보내게 된 것도 다 ‘아버지의 하얀 요리사복’ 때문이라고 생각했죠.” 히데코의 아버지는 사도섬 출신으로 히데코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고향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호텔에서 투숙객을 위한 프랑스 식당을 열었던 것이다.

 대를 이어 요리사가 되길 바랐던 부모님의 기대를 무시하고 히데코는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한 곳에 머무르는 생활과는 정반대되는 삶을 선택했다. 졸업 후 도쿄 주니치 신문에 입사했지만 3개월 만에 퇴사했다. 그리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위해 스페인 통신원이 필요하다는 말에 자원했다. 파리 지국 소속의 스페인 통신원으로 일하면서 2년6개월 정도 바르셀로나에서 살았다. 94년에 일본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그에게 ‘아버지의 옆’은 답답한 세계로 여겨졌다. 한국행을 결심했다. “대학에서 비교언어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일본과 가장 가까운 한국어에 호기심이 생겼어요.” 1년6개월 동안 한국외국어대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했고, 이후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에 입학했다. 학교수업이 없는 날엔 일본어 강사로 일했다. 그때 수강생들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고 97년에 결혼했다.

 “결혼 후 두 아이를 낳고, 가족을 위한 음식을 만들면서 ‘요리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남편의 고향은 대구다. 남편의 입맛을 위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배우기 시작한 한국 음식. 그런데 솔직히 시어머니의 손맛이 히데코에겐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동안 어깨너머로 알고 있던 한식 조리법과도 많이 달랐다. “한국 전통의 맛을 배울 수 있는 요리학원을 수소문했고 이왕이면 제대로 배우고 싶어 한복려 선생님이 운영하는 궁중음식연구원에 들어갔죠.” 히데코는 궁중음식연구원에서 3년간 수강한 최초의 일본인이다.

1 아버지가 직접 손으로 쓰고 그림까지 그린 레시피 모음.
2 아버지 나카가와 다모쓰의 40대 때 모습.
3 플로리스트였던 어머니 나카가와 가요코(75)는 예쁘고 독특한 생활용품을 골라내는 안목이 뛰어났다. 사진 속 도시락통은 히데코가 다섯 살 때 사용하던 것이다.
4 지난해 말 아버지가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딸 히데코에게 물려준 국자들.

  히데코가 요리에 더욱 빠져든 것은 아이를 키우면서다. 두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엄마가 해준 것 중 가장 맛있는 게 뭐야. 말하자면 너네가 엄마의 맛이라고 기억할 만한 것 말야?”라고 물었다. 두 아들의 대답은 똑같이 ‘라자냐’였다. “나는 일본인이니까 일본 음식인 가쓰돈(돈가스 덮밥)이나 니쿠자가(소고기 혹은 돼지고기 감자조림)를 말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죠. 아이들이 콘수프나 파스타, 로스트비프, 라자냐 등 서양요리를 ‘엄마의 맛’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내 혀가 프랑스 음식 요리사였던 ‘아버지의 맛’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구나.”

 어린 시절 아버지가 만들어 주셨던 것을 하나 둘 기억해 만들면서 레시피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친정에 갈 때면 아버지의 레시피도 복사해 왔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아버지의 레시피를 볼 때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만들어 주셨던 각종 음식들의 맛이 혀 속에 살아나는 걸 느꼈죠. 아버지의 식당 주방에서 보냈던 추억들도 떠올랐어요. 아버지는 주말 소풍의 기억 대신 ‘맛있는 음식’에 대한 추억을 내게 많이 남겨주셨던 거였어요.”

 음식 한 접시로 사랑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걸 다른 이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 4년 전부터 요리 교실을 시작했다. “일본은 2005년에 ‘식육기본법’을 만들었어요. ‘지육·덕육·체육과 함께 중요한 게 식육’이라는 게 기본 개념이죠. 어린 아이의 미각은 3~12살 사이에 만들어지니 이 시기에 아이들이 좋은 음식을 선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맛의 정보를 가르치자, 식사 시간에는 가족끼리 대화를 나누자 등이 ‘식육’의 내용입니다.”

 히데코는 아버지를 통해 어린 시절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맛보면서 ‘미각 훈련’을 했던 것이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문화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자신이 요리교실을 여는 것도 “엄마가 여러 나라의 다양한 맛을 만들 줄 알아야 아이에게 효율적인 미각훈련을 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히데코의 두 아들은 엄마가 요리를 하면 여러 가지 의견을 많이 내놓는다. 시장도 같이 볼 때가 많다. “음식을 통해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게 엄마가 아이들에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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