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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9호선 해법, 박원순 시민운동식으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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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윤창희
사회부문 기자

그의 코드에 딱 맞는다. 박원순 시장이 벌이는 서울시메트로지하철 9호선㈜과의 싸움 얘기다. 시민운동가 출신인 그로선 대기업과 금융자본을 몰아붙여 시민 부담을 줄인다는 모양새가 나쁘지 않다. 요금 올리는 것 좋아하는 사람 없으니 여론도 불리할 게 없는 형국이다.

 그런데 서울시 요구에는 무리가 있다. 약속한 수익률(8.9%)이 너무 높으니 5%로 낮추자는 것부터 그렇다. 기자는 1997년 생활설계사의 강권에 못 이겨 보험사 개인연금을 계약했다. 한데 이 연금이 확정금리 7.5%를 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수년 후 다른 상품으로 전환하라는 설계사 전화를 받고서 알았다. 기자가 당연히 그 권유를 거절했듯, 서울시가 이제 와서 9호선 투자자들에게 불리한 쪽으로 계약 변경을 강요할 수는 없다.

 일각에서는 메트로9호선이 대주주인 금융회사들로부터 15%의 고금리 후순위대출을 받아 적자를 부풀리고 있다고 공격한다. 하지만 전체 5000억원 대출 중 후순위대출이 일부(13%)라는 사실은 쏙 뺀다. 나머지(87%) 대출은 금리 7.2%의 선순위대출이다. 이는 협약에도 나와 있는, 서울시도 이미 알고 있는 얘기다.

 메트로9호선을 향한 서울시의 공격은 결국 자신들이 협상을 잘못했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다. 요즘 서울시 공무원들은 정책 실패를 언론이 비판해도 별로 아파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 정책이나 협상이 잘못됐다고 스스로 소리치고 다닌다. 다 전임 시장과 퇴직공무원들 탓이라며 새 시장의 코드에만 맞춘다. 급기야 서울시는 다음 달 9일 메트로9호선에 대한 청문 절차를 거쳐 사장 해임을 추진하겠다는 초강경 입장을 내놓고 있다.

 메트로9호선을 옹호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일방적인 요금인상 선언은 공공재 지하철을 볼모로 한 볼썽사나운 행위다. 이미 지난 2월 150원을 올린 데 이어 또 500원을 올린다면 900원이던 요금이 몇 달 새 1550원으로 오르게 된다. 시민들이 감당하기 어렵다. 현대로템·신한은행·포스코ICT 같은 메트로9호선 대주주들은 시민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될 대형 기업들이다. 2대 주주인 맥쿼리 인프라도 군인공제회·신한금융지주·대한생명 등 큰손들이 투자한 회사다.

 양쪽이 막가파식 싸움을 멈추고 타협하는 게 맞다. 박 시장도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몰고갈 게 아니라 민자사업의 특성상 일정 부분 부담증가가 불가피하다는 걸 시민들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복지 예산 증가로 주요 인프라 사업에 민간 사업자들을 계속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번 일은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 그런 진지한 타협과 설득 과정이 있다면 지난해 강남에서 여의도로 출근하며 9호선 급행의 편리함에 감탄했던 기자 같은 시민들도 합리적인 수준의 요금인상은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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