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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암환자였어요" 한 마디에 환자들 눈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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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서울대암병원의 여성 암생존 자원봉사자들이 지난 9일 서울대암병원 암정보교육센터에서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김승연·박순덕·이병숙·정정자·박춘숙씨. 또 다른 자원봉사자인 서선미·신재은씨는 당일 감기몸살로 나오지 못했다. [강정현 기자]

“머리카락 빠졌다고 비누로 그냥 감지 말고 전용 샴푸 쓰세요. 항암치료 중엔 피부도 약해지거든요. 치료 끝나면 머리도 다시 나요. 제 머리도 다 빠졌다가 다시 자란 거예요.”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암병원 5층 항암주사치료실. 주사를 맞으려고 기다리던 유방암 환자 김모(32·여)씨는 하늘색 가운을 입은 박순덕(59·여)씨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한 표정이었다. 박씨 역시 7년 전엔 김씨와 같은 유방암 환자였다. 유방절제수술 등의 치료 끝에 2005년 4월 몸에서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는 현재 서울대암병원의 암 생존 자원봉사자다. 고통스러운 치료를 견뎌낸 ‘선배’의 조언에 김씨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여성들이 암환자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다. 박씨를 비롯한 7명의 여성 유방암 생존자들은 지난해 7월부터 서울대암병원에서 환우자원봉사자로 활동 중이다. 이들은 병동 내 주사치료실, 병실 등을 돌며 환자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있다.

 봉사 여성들은 모두 항암치료를 끝낸 유방암 생존자다. 대부분 치료를 끝낸 지 5년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환자들에게 경험에서 우러나는 정보를 더 잘 알려줄 수 있다. 치료 중 좋은 음식, 항암치료 중 통증 해소법 등이다. 물론 의학적 전문지식이 필요하면 환자들에게 의사와의 상담을 주선한다. 하지만 봉사자 김승연(47)씨는 “의사들의 조언도 치료 중 홍삼을 먹고 간 수치가 올라 위독했었다는 제 경험을 곁들이면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물론 상담이 쉽지만은 않다. 말을 걸면 외면하는 환자도 많다. 그러면 봉사자 박춘숙(66)씨는 여성 환자들에게 상의를 벗어 자신의 유방 절제수술 자국을 보여준다. 박씨는 "‘나도 암환자였다’는 메시지를 보내면 환자들이 쉽게 마음의 문을 연다”고 말했다.

 암 생존자가 병원에 상주하는 건 서울대암병원이 처음이다. 이로 인해 입소문을 듣고 다른 병원 환자들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암환자들에게 존재 자체가 위안이다. 상담을 하면 환자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 바로 “나도 다 나으면 이런 봉사 일을 할 수 있을까요?”라고 한다. 암정보교육센터 정보람 사회복지사는 “환자들은 자신과 같은 암환자들이 건강하게 봉사활동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용기를 얻는다”고 말했다. 박순덕씨는 “가끔 치료에 성공한 사례를 말하면 환자들 눈이 반짝거린다”며 “이들은 사실 ‘당신도 살 수 있다’는 얘기가 매우 듣고 싶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봉사자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환자들에게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신재은(54)씨는 “환자들을 보며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마음을 다시 다잡게 된다”며 “환자분들에게 제가 많은 걸 받았다”고 말했다.

의사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했다. 박춘숙씨는 “암환자들은 의사 말 한마디에 ‘뻑’ 갑니다. 치료 결과와 상관없이 의사들이 환자에게 조금만 따뜻하게 말을 건네면 이들은 큰 힘을 얻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암 생존 환우들 어떤 봉사 하나

▶서울대암병원 3층 암정보교육센터 상주

▶암병원 내 주요 병동과 항암주사실 등 돌며 암환자 상담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식습관 등 생활방식 조언

▶환자의 개인적 고민 들어주며 심리적 안정 유도

▶보호자들과도 대화하며 간호 방법 조언

▶전문 의학 지식이 필요한 경우 의사와의 상담 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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