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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비즈 칼럼

정유4사 과점 깨야 기름값 잡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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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윤원철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지난주 정부는 석유제품시장 경쟁 촉진과 유통구조 개선안을 발표했다. 대안의 골자는 알뜰주유소 확대, 혼합판매 활성화, 전자상거래시장 활성화 등이다. 또한 기존 정유 4사 이외에 제5의 석유제품 공급사를 시장에 참여시킨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대안의 하나하나가 시장에 제대로 정착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사안별로 정유사와 주유소가 날 선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비판이 집중되는 대표적인 분야가 알뜰주유소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의 산물이며, 시장원리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실제 정부도 알뜰주유소의 확산을 위해 범부처 차원의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알뜰주유소가 시장원리에 어긋난다는 주유소 업계의 비판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볼 점이 있다. 한국은 1997년 석유시장을 자유화했지만 지금까지 4대 정유사의 시장점유율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이들 정유사와 전속계약을 맺고 있는 브랜드 주유소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웃 일본의 경우 75% 수준인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이렇게 정유사와 브랜드 주유소가 석유제품의 공급과 유통 부문을 장악하다 보니 소비자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가격경쟁이 제대로 일어날 수 없었다. 결국 정부의 개입을 통해서라도 시장의 판도를 바꿔야만 하는 지경이 된 것이다.

 다음으로 혼합판매를 활성화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대해서는 정유사의 반대 입장이 강경하다. 비록 혼합판매 자체를 반대하지 않지만 혼합판매를 하려면 이 사실을 소비자에게 분명히 알리고 주유기와 저장탱크를 분리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정유사의 상표권과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재도 정유사 단계에서 물류비용을 아끼기 위해 정유사 간 제품을 교환하고 있으며, 주유소 단계에서도 일부 타사 제품을 섞어 팔고 있다. 석유관리원 발표에 따르면 소비자가 걱정하는 제품 혼합에 따른 영향은 품질과 차량 성능 측면에서 거의 없다고 한다.

 혼합판매의 시행 과정에서 미비한 점은 분명 보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유사와 주유소 간 전량 구매계약으로 인한 수직계열화의 피해가 전부 소비자에게 돌아갔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결국 혼합판매는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통해 제대로 된 가격을 소비자가 지불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자상거래 시장을 도입한 것은 국내 석유제품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다. 기존 정유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던 가격을 다수의 공급자와 수요자가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을 통해 결정해 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대의명분에 대해서는 정유사도, 주유소도 반대할 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경쟁 자체를 반길 리 없는 현재 시장구조에서 정유사와 주유소 모두가 거래를 기피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의 개입이 어느 정도까지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판단 기준은 시장에서 경쟁이 발생할 수 있어야 하고, 이러한 경쟁의 이득이 소비자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석유제품 시장 경쟁 촉진과 유통구조 개선 방안으로 기름값이 갑자기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점적 석유제품 시장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꿔 더욱 투명하게 가격을 결정하고 경쟁을 통해 조금이라도 가격을 내리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윤원철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