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부터 소문이 돌긴 했다.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에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였다. 야근이 확 늘었다더라, 칼퇴근을 막으려고 통근버스를 없앴다더라, 엔지니어 유출이 심각하다더라…. 16일 한국경제신문에 앞뒤 정황을 짐작하게 하는 기사가 실렸다. NHN 창업자인 이해진 최고전략책임자가 지난달 한 사내강연의 요지였다.
그는 “사내 게시판에서 ‘삼성에서 일하다 편하게 지내려고 NHN으로 왔다’는 글을 보고 억장이 무너졌다. NHN을 동네 조기축구 동호회쯤으로 알고 다니는 직원이 적잖다”고 질타했다. 이어 “출근시간을 늦춘 건 새벽까지 일하는 직원이 많았기 때문”이며 “최첨단 환기시스템과 100만원이 넘는 의자도 제공”했는데 요즘은 칼퇴근하는 직원이 많다고 개탄했다. 이러다간 아차 하는 새 추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는 그가 이렇게까지 나선 데엔 이유가 있다. 네이버는 국내 웹 검색 시장의 절대강자다. 모바일에선 아니다. 구글·다음은 물론 카카오톡 같은 신생 벤처에 밀리는 양상이다. 속이 탈 만하다.
하지만 발언이 알려진 뒤 그에게 쏟아진 건 격렬한 비판이었다. 포문을 연 건 전 NHN 직원 김형준씨였다. 그가 출근길에 기사를 읽고 작성했다는 블로그 글은 SNS를 타고 삽시간에 퍼졌다. 동조 글이 이어졌다. ‘NHN은 이미 대기업인데 창업자는 무턱대고 벤처정신만 요구한다’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하지 못한 책임을 왜 직원들에게만 묻나’ ‘엔지니어를 춤추게 하는 건 비싼 의자가 아니라 자기주도적 환경이다’. 대략 이런 것들인데, 17일 저녁 만난 IT업계 지인들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그중 한 여성 벤처인의 말이 인상 깊었다. “이해진 창업자는 대단한 사람이다. 한데 개인도, 기업도 존경받지 못해 안타깝다.” 그는 이어 “6, 7년 전 국내 인터넷 벤처는 죽다시피 했었다. 뭘 해도 네이버가 베껴 곧 압도해 버렸다. 모바일 환경에서도 그럴 줄 알았는데 이번엔 느리더라. 숨통이 트인 느낌”이라고 했다.
이렇다 보니 NHN의 자중지란을 보는 외부의 시선은 차갑다. 오늘의 구글·애플을 만든 건 그들이 앞장서 키운 산업 생태계다. 과감한 인수합병과 기술 공개로 없던 시장을 만들었다. 반면에 NHN은 지금 ‘어항 속 고래’다. 관료주의, 엘리트주의마저 기승을 부린다. 그래서야 어항을 깨고 나올 수 없다.
어찌 보면 이번 파문은 긍정적 신호다. 갈등을 계기로 경영진이 직원, 업계와 적극적 소통에 나선다면 NHN은 새 성장의 기회를 맞을 것이다. 끝내 혁신에 실패한다 해도, 미안하지만 고객이나 업계로선 딱히 아쉬울 게 없다. NHN에 ‘갇힌’ 인재들이 쏟아져 나와 벤처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이해진 창업자도 13년 전엔 겁 없이 삼성을 뛰쳐나온 젊은 엔지니어였다.
이나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