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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재미없으면 구겨버려 … 팬들, 그 진심 알아듣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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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SBS 파워FM ‘2시탈출 컬투쇼’(매일 오후 2시~4시)의 DJ 정찬우(왼쪽)·김태균(오른쪽)과 이재익 PD가 머리를 맞댔다. 컬투는 “이제는 ‘컬투쇼’가 밥 먹는 것처럼 일상이 됐다. 변함없이 사랑해주는 청취자들에게 감사하다. 밥 먹는 것처럼 계속 들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음 달 1일, 6주년 기념방송은 공개방송으로 펼쳐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아마도 이 기사는 ‘2시탈출 컬투쇼(SBS 파워FM)’만큼 재미있지 않을 것이다. ‘컬투쇼’만큼 웃기는 인터뷰였지만 컬투(정찬우·김태균)의 목소리를 글로 드러내기란 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의 유머는 ‘말맛’에서 나온다. 정찬우(44)와 김태균(40)은 말의 장단과 고저, 여백을 이용해 평범한 이야기도 즐겁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컬투쇼’가 평균 청취율 16%를 기록하며 전시간대 1위를 수성하는 이유다.

‘컬투쇼’가 다음 달 1일 만 6주년을 맞는다. 17일, 서울 목동 SBS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이들을 만났다. 프로그램의 숨은 공신 이재익(37) PD도 함께했다.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이 PD는 최근 ‘컬투쇼’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 ‘원더풀 라디오’의 시나리오를 썼다. 3년을 함께해온 셋은 ‘컬트 트리플’이라 해도 좋을 만큼 죽이 잘 맞았다.

‘2시 탈출 컬투쇼’의 로고 사진.

 ▶정찬우(정)=우리가 방송을 엉뚱하게 하니까 2년 정도 하면 많이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청취자들이 계속 받아주는 거죠. 10개월 이상 진행한 프로그램이 없었거든요. 진행 솜씨로 따지면 신동엽(KBS ‘안녕하세요’의 공동 MC)을 못 이겨요.

 ▶기자=방송을 짓궂게 하는데 그게 재미있어서 웃는 분이 많더라.

 ▶김태균(김)=사연이 재미없으면 “앞으로 보내지 말라”고 하거나 사연을 구겨요. 인위적이면 “지어낸거 아니냐”고 하고요. 청취자와 같은 감정에서 가식 없이 진행하는 거죠.

 ▶정=욕쟁이 할머니가 욕한다고 그게 진심은 아니잖아요. 청취자들이 그걸 알아요. 동네 형이 농담하는 것 같고, 우리의 ‘늙음’이 강점이 되는 것 같아요.

 ▶기자=‘컬투’로 함께한 세월이 18년인데.

 ▶김=형은 뼛속까지 개그맨이에요. 제게 없는 탁월한 능력이 있어요.

 ▶정=더러움이 있지.

 ▶김=(웃음) 어릴 때 놀던 기질에서 나오는 재치가 있어요.

 ▶정=태균이는 중후한 목소리에 춤도 잘 추고 잔재주가 많은데 부러워요.

 ▶기자=(‘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옥희 목소리를 흉내내는 게 부럽나요.

 ▶정=그게 부럽진 않아요. (웃음)

 ▶기자=둘이 갈라질 생각은 없나요.

 ▶정=아직까지는 돈도 되고(웃음). 오랫동안 같이 해서 ‘샴쌍둥이’ ‘자웅동체’ 같아요. 앞으로 은퇴를 하고 싶어도 반쪽에 대한 부담이 있고, 팬들의 기대도 있어서 쉽게 정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이재익 PD(이)=찬우 형이 홈런타자면 태균 형은 안타제조기예요. 공연장에서 단련된 맷집이 생방송에서 빛을 내는 거죠.

 ‘컬투쇼’는 라디오에 방청객을 도입한 최초 프로그램이다. 매일 30~40명의 방청객이 스튜디오를 찾아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모든 콘텐트도 청취자 기반이다. 재미있는 사연을 소개하는 ‘사연진품명품’, 청취자가 쓴 가사로 노래를 만드는 ‘원더풀 라디오, 송 프로젝트’, 방송인 것을 숨기고 전화를 거는 ‘행운의 전화, 여행가세요’ 등 청취자가 배제된 코너는 드물다. 이 모든 아이디어는 3명의 PD와 4명의 작가, 컬투가 머리를 맞대고 짜낸다.

 ▶이=회의시간이 살벌하죠. 1등 방송이라 부담이 큽니다. 매일 예능프로그램 하나를 찍는 기분이에요. 코너를 짤 때는 청취자의 참여를 늘 염두에 둡니다. DJ와 청취자가 정서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지향합니다.

 ▶기자=이 PD가 방송에 나오면 ‘말발’이 컬투 버금가는데, 어떤 분인가요.

 ▶정=정말 서울대 나왔나 의심스러워요. 놀 줄도 알고, 방송을 위해 눈썹문신한 것을 밝혔으니까요.

 ▶김=언제 저렇게 다작의 소설과 시나리오를 써냈는지 대단하죠. 뮤지컬 대본을 써주기로 2000원에 계약했어요. (웃음)

 ▶이=소설 12편과 시나리오 3편을 썼는데 검색창에 이름을 치면 ‘눈썹문신’이 제일 먼저 나와요. 남성 뷰티숍을 차려야 하나 정말 고민했습니다.

 6년간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이 PD는 컬투쇼의 가장 큰 위기의 순간을 ‘남아공 월드컵 음주방송’으로 꼽았다. 2010년 남아공 현지에서 전화연결을 한 정찬우가 음주상태로 방송을 한 사건이다. 당시 정찬우는 직접 장문의 사과문을 써왔다. 그는 “모두에게 정말 죄송했다. 진심밖에 없는 것 같아서 국장님께 직접 허락을 받고 사과문을 읽었다”고 했다. 이 PD는 “지금은 오지영 PD가 팀장으로 와서 방송사고도 줄고 더 단단해졌다”며 “‘원더풀 라디오’ 시나리오는 방송사고를 이겨낸 후 한 마음이 된 우리 스텝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라고 했다.

 부침을 겪었지만 좋은 일도 많이 벌였다. 청년 구직자 응원 캠페인, 암환자와 함께하는 컬투쇼 등이 그 예다. 이 PD는 “결혼식을 못한 부부를 위해 합동결혼식을 올리는 게 꿈”이라고 했다.

 ▶기자=컬투쇼는 언제까지 계속되나.

 ▶이=정년이 20년 남았어요. 형들 같이 가줄 거죠.

 ▶컬투=그래볼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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