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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랑이 기이한 동거... 새 주인 못 만난 용호문 백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66호 12면

1, 2 뉴욕 크리스티의 아시아위크 행사장

3월 21일 오후 뉴욕 맨해튼 크리스티 경매장. “더 생각 있는 분 안 계세요(any further interests)?” 이어 망치소리가 들렸다. 65만 달러(약 7억3000만원). 경매번호 1078 ‘An Important Blue and White Porcelain Jar with Dragons and Tigers’라는 이름의 18세기 조선 백자는 그러나 새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 소장자가 내정가에 못 미쳤다며 작품을 거둬들였기 때문이다. “원소장자인 일본인은 최소한 100만 달러에서 150만 달러를 기대했다”는 얘기가 객석에서 흘러나왔다.

아시아 고미술 장터, 뉴욕 아시아위크 참관기

사실 크리스티는 이 작품에 각별한 기대를 걸었다. 한글과 영문으로 이 작품을 집중 설명한 카탈로그도 따로 냈다. 설명의 일부를 보자. “…설백(雪白)의 태토(胎土)에 은은하게 청색(靑色)이 비낀 유약에 진하지도 흐리지도 않은 코발트의 발색과 용호(龍虎) 네 마리가 구름 속에서 두 마리씩 여의주(如意珠)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모습 등이 아주 희귀한 예이면서 모두 이 항아리에 사랑스러운 맛을 더한다….”

높이가 34.1㎝인 이 도자기의 가장 큰 특징은 용과 호랑이가 같이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자수 전문가로 아시아 위크 섬유부문 감정위원으로 10년 가까이 일하고 있는 정영양 설원문화재단 이사장은 “조선시대 관복에 사용하는 흉배로 볼 때 용은 임금, 문신은 학, 무신은 호랑이로 표현하는데 서로 다른 계급을 뜻하는 용과 호랑이가 같이 그려진 것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3 ‘An Important Blue and White Porcelain Jarwith Dragons 1 and Tigers’(18세기 조선)

3월 초 서울에서 이미 이 도자기를 살펴봤다는 명지대 윤용이 교수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는 “1750년 전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반적으로 용이 그려진 도자기는 사대부 집안에서라도 사용할 수 없었다”며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 용호문 백자를 만들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수복강녕(壽福康寧)이라는 네 글자가 각각 원 안에 그려진 것도 보기 드문 것이라고 말한 뉴욕 크리스티 김혜겸 부사장은 “새 주인을 찾을 때까지 뉴욕에서 보관 중”이라고 11일 알려왔다.

이날의 경매는 아시아 위크의 관련 행사 중 하나로 치러졌다. 아시아 위크는 맨해튼에 있는 33개의 앤티크 갤러리와 5개 메이저 경매사, 19개 박물관, 아시아 관련 기관들이 참가하는 아시아 고미술 관련 행사다. 올해는 3월 16일부터 24일까지 맨해튼 미드 타운과 업타운에서 열렸다. 한국 갤러리로는 ‘강 컬렉션’과 ‘구(Koo) 뉴욕’ 두 곳이 참가했다.

중국과 일본의 옛 도자기·불상·장신구 등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한국 고미술에 대한 관심도 최근 급속하게 높아지고 있다. 31년간 한국 고미술을 거래해온 강 컬렉션의 강금자 대표는 그 원인으로 국제교류재단의 외국 큐레이터 국내 연수 교육을 꼽았다. “국제교류재단의 한국 예술 교육 연수에 참가하고 한국의 문화가 중국·일본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미국 큐레이터들이 자연스럽게 한국 고미술에 눈을 돌리고 있다”며 “올해도 아시아 위크 참석을 위해 미국 주요 미술관 아시아 담당 큐레이터와 컬렉터들이 뉴욕으로 많이 모였다”고 소개했다.

57번가 풀러 빌딩은 14개의 고급스러운 갤러리가 모여있는 곳이었는데 특히 소장 작품들의 질이 높았다. TK 아시안 앤티크 갤러리는 중국 요나라 시대에만들어진 용 무늬와 봉황 무늬 왕관 한 쌍을 내놓았는데 가격이 300만 달러가 넘었다.

그런가 하면 34번가 7WEST 빌딩에서는 코엑스처럼 여러 갤러리들이 부스를 차린 ‘Arts of Pacific Asia Show’도 열렸다. 이 행사의 언론담당 월터 보턴은 “유럽과는 완전히 다른 아시아 하이 컬처에 대해 미국 상류층의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중국·대만·홍콩 등지에서 온 미술 관계자들로 행사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다. 홍콩에서 고미술 딜러로 일하고 있다는 류오시아는 “베이징보다 뉴욕이 싸고 믿을 만하다”며 이곳을 찾는 이유를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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