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곰인줄 알았는데 … 강동희도 놀란 ‘여우’ 이상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프로농구 KGC인삼공사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끈 이상범 감독이 12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농구공을 안고 포즈를 취했다. 스스로 50점짜리 감독이라고 했지만 그는 감독 데뷔 3년 만에 우승을 일궈냈다. [안양=안성식 기자]

소주 한 병 주량은 네 병이 됐다. 평소 가정적이지만 닷새 동안 집 근처도 못 갔다. 지난 6일 프로농구 KGC인삼공사를 창단 첫 우승으로 이끈 뒤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이상범(43) 감독. 그가 누리는 우승 감독의 특권이다. 지인과의 약속, 구단 행사 등 끊임없는 일정 탓에 이 감독은 “정말 힘들다. 그러나 즐겁다. 우승은 아무나 하는 거 아니지 않나”라며 웃음을 지었다.

 술이 달콤하기까지는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2009년 KT&G(KGC인삼공사 전신) 감독을 맡은 뒤 열흘이 안 돼 이 감독은 주전 선수들을 트레이드하고, 군입대시켰다. 소위 리빌딩이었다. 성적은 불을 보듯 뻔했다. 2년 연속 하위권에 머무르자 남몰래 숙소 구석에서 술도 많이 마셨다고 한다. 양복 주머니에는 항상 사직서를 넣어 다녔다.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다.

 그러나 이 감독은 허전하고 쓰린 속을 오기와 목표의식으로 채웠다. 그는 “우리 팀은 항상 중간에서 맴돌면서 좋은 선수를 뽑지 못했다. 거의 20년을 몸담은 팀인데, 후임 감독이 오더라도 꼭 우승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팀 리빌딩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드디어 김태술·양희종이 전역하고 지난해 드래프트 1·2순위 박찬희·이정현, 올 시즌 신인왕 오세근이 가세하면서 인삼공사는 창단 첫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이 감독은 “한 해 60억~70억원을 쓰는 구단이 성적이 안 좋았는데도 기다려 주다니”라며 스스로 놀라워했다.

 이 감독은 프로농구 첫 득점, 첫 3점슛, 첫 프랜차이즈 감독 등 이름 앞에 ‘첫’이라는 수식어가 많다. 그러나 SBS 시절 홍사붕·오성식에게 밀려 식스맨으로 주로 뛰었고, 부상 탓에 서른 한 살에 일찍 은퇴했다. ‘주연’보다는 ‘조연’에 가까운 선수생활을 한 그는 ‘하나’를 강조한다. 그는 “선수 시절 경험이 많이 도움됐다. 젊은 선수들에게 ‘절대 자만하지 말고 선배들에게 예의를 갖추라’는 조언을 자주 한다”고 했다.

 인삼공사가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우승한 또 하나의 비결은 ‘전술’이다. 그런데도 이 감독은 일부 팬들로부터 ‘전술 없는 감독’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화려한 선수 구성에 비해 전술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친구들로부터 “바보같이 가만 있지 말고 전술 얘기 좀 하라”는 얘기를 듣는다. 이 감독은 “선수단이 아무리 좋아도 우승 못한 팀이 많다”며 “선수는 주연, 감독은 조연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변의 평가를 비웃듯 이 감독은 빠른 공수 전환과 챔피언 결정전 2주 전에 준비한 드롭존 수비로 정규리그 우승팀 동부를 꺾었다. 강동희 동부 감독도 예상하지 못한 카드였다. 이 감독은 “주전 세 명이 국가대표팀에서 시즌 개막 열흘 전에 합류했다. 정규시즌 때는 호흡이 우선이었지만 플레이오프 때는 시즌 때와 똑같이 하면 무조건 질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팀 리빌딩을 함께 주도한 김호겸 전 인삼공사 사무국장은 “곰 같은 줄 알았는데 여우였다”고 이 감독을 평가했다.

 이 감독은 요즘 술뿐만 아니라 지출도 크게 늘었다. 그는 “요즘 어딜 가든 홍삼 선물을 자주 해야 한다”며 “내가 홍삼 홍보대사가 된 것 같다”며 웃었다. 경기 전 홍삼의 효능을 자주 얘기해서다. 찾아뵙고 인사할 곳이 많다는 이 감독은 “돈 들여 선물해도 기분이 좋다.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했다.

이형석 기자

이상범은

◆생년월일 : 1969년 3월 8일

◆체격 : 1m84㎝·90㎏

◆학력: 대전고-연세대

◆포지션: 가드

◆주요 경력: SBS(1997~2000)-KT&G코치(2005~08)-KGC 감독(2009~현재)

◆가족 관계: 아내 이정아(43)씨 딸 환희(14)

◆취미: 안양천 걷기, 사이클

◆좋아하는 음식: 모밀·홍삼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1박2일(선수단 버스 이동 시 항상 시청)

◆최근 관심사: 용병 드래프트 누구 뽑을까? 국가대표팀 어떻게 이끌까?

◆노래방 애창곡: 한 잔의 추억(이장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