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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가게, 개성 사라져도 가로수길은 그 ‘가로수길’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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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20여 년 전 ‘인 서울’ 대학에 합격하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이제 그 동네에 가 볼 수 있겠구나” 하는 거였다. 초등학교 시절 6년을 성북구 삼선교 인근에서 보냈다. 경사 급한 비탈을 따라 수십 년 된 일본식 가옥이 늘어선 동네였다. 그중 하나에 세 들어 살았는데 어린 시절 기쁘고 슬픈 모든 일들을 거기서 겪었다. 앞집 계단 난간에서 미끄럼 타다 팬티까지 구멍이 난 일, 민들레 찧어 병뚜껑에 담아 소꿉놀이하던 일. 처음이자 마지막 가출을 감행한 것도 그때였는데, 저녁 무렵 비장한 마음으로 문을 나섰지만 집 불빛 뵈는 서울성곽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통금 사이렌이 울리자 결국 기어들고 말았었다.

 중학교 입학 무렵 이사를 했고, 고교는 아예 지방에서 다닌 터라 그리움이 간절했다. 상경 뒤 정말 제일 먼저 달려갔다가 딴 동네인가 했다. 기억보다 훨씬 비좁고 단조로웠다. 그래도 어쩌다 맘에 드는 남학생이 생기면 거기부터 끌고 갔다. 반응이 맨송맨송하면 괜히 섭섭했다.

 신혼 시절 경기도 여기저기를 떠돌 때도 언젠가 옛 동네 근처에서 살리라 했다. 10년쯤 전 드디어 게서 멀지 않은 종로구 청운동에 자리 잡았을 땐 인생의 큰 성취라도 이룬 듯 뿌듯했다. 이후 평창동으로, 부암동·구기동으로 북한산 자락을 오르내리며 살았다. 골목마다 새 추억이 생겼다. 단골 찻집과 단골 떡집, 세탁소와 만화가게. 지난해 사정이 생겨 타지 아파트로 이사했다. 가족 모두 일종의 향수병을 앓았다. 주말이면 요즘도 한 시간씩 차를 달려 옛 동네를 찾는다. 한데 요즘은 거기도 심상찮다. 드라마와 매스컴 덕에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알려지면서 관광지 비슷하게 변모하고 있다. 정든 가게가 사라지고 옛 건물이 헐린다. 맛도 멋도 밋밋해져 간다. 생활의 흔적 대신 디카 든 상춘객들이 곳곳을 점령해 버렸다.

 지난 토요일 신사동 가로수길을 걷다 비슷한 상실감을 느꼈다. 몇 달 새 엄청나게 달라져 있었다. 국내외 패스트패션 브랜드,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대기업 계열 식당들이 요지를 점령했다. 애초 이 길에 생명을 불어넣었던 디자이너 숍, 찻집과 식당 상당수가 보이지 않았다. 그중 한 식당에 전화를 걸었다. “임대료가 대여섯 배 올라 세로수길로 밀려났다”고 했다. 세로수길은 가로수길 양편 뒷골목을 말한다. 상권이 커지자 건물주들이 거액의 권리금과 임대료를 챙기려 기존 세입자를 내쫓다시피 하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이다.

 이제 가로수길에 무명 디자이너, 파격적 발상의 독립 큐레이터, 나만의 요리에 목숨 건 젊은 요리사들이 ‘생애 첫 가게’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 그러고도 가로수길은 여전히 그 ‘가로수길’일 수 있을까. 자고 나면 뒤집히는 동네에 추억과 애정을 심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집주인에게도 반가운 일이 아닐 터. 멀리 보고 길게 보는 혜안이 아쉽다.

이나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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