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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통신비 인하, 정치권 이슈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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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유태열
KT 경제경영연구소장

지난 대선 때 나왔던 통신비 인하 공약이 대선을 앞두고 또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동통화료 20% 인하를, 민주통합당은 기본료 무료를 주장하고 있다. 이렇듯 통신비를 두고 정치권 여기저기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가계지출에서 차지하는 통신비 비중을 낮춰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통신비 비중이 크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휘발유, 전기, 가스, 버스, 지하철, 이동전화료 등 주요 공공서비스 가운데 이동전화료만 유일하게 전년 대비 6.4% 감소하고 다른 요금은 모두 상승했다고 한다. 통신비가 가계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매년 하락하고 있다.

 서민 가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일률적으로 모든 국민의 통신요금을 인하하라는 주장도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해 기본료 1000원 인하 조치에 대해 정치권은 체감효과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기본료 인하에 대해 주식시장에서는 ‘곰탕 한 그릇과 정보통신의 미래를 바꿨다’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는 상반된 평가를 하고 있다.

 선거에서 표를 의식해 공약을 하고, 또 그 공약에 얽매여 정책을 추진할 경우, 소위 ‘중위투표자’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중위투표자 정리(median voter theorem)’는 여러 대안을 놓고 다수결 투표를 할 때 대안의 선호도를 기준으로 유권자를 일렬로 세운다면 가장 중간에 위치하는 중위투표자가 선호하는 대안이 선택된다는 이론이다. 양당 정치체제에서 대다수 유권자가 밀집한 중간층을 대상으로 공약을 하다 보면, 두 정당의 공약이 유사해져 결국 득표에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경제의 효율성과 성장을 저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정책은 그 대상 타깃에 맞는 수단을 써야 효과가 있는 것이다.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요금 인하 정책을 추진할 경우 정책의 대상인 서민층도 혜택을 못 느끼고,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고, 정보통신 생태계의 성장을 저해해 결국 이용자의 편익을 감소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먼델 교수는 "정치인의 ‘공짜점심’이 경제를 망친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미국의 부채 증가로 경제가 파산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것은 정치인들이 유권자의 환심을 사려고 제시하는 ‘공짜점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통신비 논란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였던 본브라이트는 유명한 저서 『공공요금의 원칙』에서 공공서비스 요금이 만족해야 할 원칙의 하나로 ‘충분한 수익을 보장해 줄 것(revenue sufficiency)’을 들고 있다. 요금이 지나치게 싸질 경우 궁극적으로 소비자 부담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서비스 지속성을 유지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 의회 신년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의 통신환경이 부럽다”고 하면서 “불필요한 예산을 삭감해서라도 초고속과 무선 인프라 구축을 위한 예산을 확보할 것이다. 어제의 인프라를 유지하면서 내일의 경제를 기약할 수 없다”고 역설한 바 있다.

 총선이 지나면 바로 대통령 선거다. 선거철만 되면 통신을 동네북으로 생각하고 통신비 인하를 들고 나오는 습관을 버리고 국가의 미래 인프라로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을 기대해 본다.

유태열 KT 경제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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