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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 침몰 전한 모스 부호 … 미디어 혁명 이끈 원조 ‘SN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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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912년 4월 호화 유람선 타이타닉호 침몰 보도는 속보와 세계화, 스토리텔링을 특징으로 하는 20세기 저널리즘의 출발점이 됐다. 사진은 당시 미국 뉴욕 신문사 옥외 게시판에 타이타닉 속보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든 장면. [AP file=연합뉴스]

타이타닉호 침몰 100주년을 맞아 이 사건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1912년 4월 15일, 영국 호화유람선 타이타닉호가 대서양 심연으로 침몰하던 밤. 650㎞ 떨어진 캐나다 뉴펀들랜드 연안의 마르코니 무선전신국에 모스 부호가 긴박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SOS(구조요청)” 띄엄띄엄 수신된 긴급 메시지는 AP 통신의 텔렉스를 타고 뉴욕 타임스 편집국에 도착했다. 이미 1면 초판이 인쇄되고 있었지만, 카르 반 안다 편집국장은 즉각 새 1면 헤드라인을 뽑았다. “타이타닉호 빙산과 충돌/ 자정 무렵 뱃머리부터 침몰 중.”

 그 헤드라인은 여느 신문들이 사태를 낙관하며 조심스레 뽑은 제목들과 전혀 달랐다. 희망이나 추측이 아니라 모스 부호가 전해준 사실들에 입각해 신속하고 폭넓게 ‘타이타닉 스토리’를 전했다.

 “뉴스 전파의 관점에서 타이타닉 재난은 미디어학자 마셜 맥루언이 일컬은 ‘지구촌’의 시작을 보여준다.” 8일 AP통신은 100년 전 타이타닉 침몰사건이 바꿔놓은 뉴스 보도의 역사를 돌아보며 이렇게 요약했다. 비록 맥루언은 60년대 위성통신에서 ‘지구촌’ 미디어의 시작을 보았지만, 타이타닉호 침몰 당시 마르코니 무선의 역할은 이와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이다. 마치 오늘날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처럼 당시로선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뉴스가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타이타닉 보도가 오늘날 9·11테러 보도에도 관통하는 뉴스 사이클을 보여줬다고 지적한다. 먼저 혼돈스러운 사건 그 자체가 있다. 이어서 연루된 인간들의 스토리가 온다. 그리고 책임자 지목이 따른다. 독자가 누구를 비난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는 과정이다. 타이타닉 재난은 처음 텔렉스 메시지를 통해 무엇(what)이, 이어 구조된 승객들이 뉴욕항에 도착하자 언제·어떻게(when and how)가, 그리고 관계자들 조사를 통해 왜(why)가 보도됐다.

 타이타닉 뉴스는 몇 주간 각 언론 1면을 휩쓸었고, 이 과정에서 취재원 독점 인터뷰와 숙소 밤샘 대기 같은 취재 경쟁도 치열했다. 타이타닉호 소유주인 화이트 스타라인 측의 침묵과 오도된 정보로 인한 혼란과 오보도 횡행했다.

 ◆100년 만에 타이타닉 항해 재연=첫 항해에서 침몰한 타이타닉호의 꿈을 100년 만에 실현하는 행사가 열린다. CNN은 타이타닉호와 꼭 같이 1309명의 승객(총승선자는 2200여 명)을 태운 MS 발모럴 호가 10일(현지시간) 100년 전 항로대로 영국 사우샘프턴을 출발해 미국 뉴욕항으로 향한다고 전했다. 28개국에서 모여든 승객들은 타이타닉호 희생자의 유가족, 생존자의 친척, 역사학자, 작가 등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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