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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핵실험은 대미 협상 - 체제 결속 다목적 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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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 풍계리 핵실험장 서쪽서 새 갱도 포착 북한이 3차 핵실험을 위한 마지막 준비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8일 확인됐다. 새로 포착된 갱도 부근에 핵실험 때 방사능 등 핵물질의 유출을 막기 위한 갱도 봉인용 토사가 갱도 입구에 쌓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사진 미국 상업위성 퀵버드]

장거리 로켓 발사에 이은 핵실험. 패턴화한 북한의 두 가지 도발엔 전략적 노림수가 깔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번엔 김일성 100회 생일(4월 15일)을 맞아 첨단 기술력을 과시함으로써 ‘강성국가’의 이미지를 확립하려는 게 주목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김정은의 ‘김정일식’ 통치술의 연장이다.

 김정일은 생전 두 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미국의 핵공격을 막기 위해선 핵을 보유할 수밖에 없다”는 ‘핵억지력’을 강조했었다. 심각한 경제난으로 체제 위기에 몰렸지만 미국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과 대량살상용 핵무기라는 첨단과학 역량을 과시함으로써 주민들의 결집과 체제 유지를 노린 것이다.

미국 상업위성인 ‘퀵버드’가 지난 1일 촬영한 영상에 따르면 북한은 핵실험장에 기존의 2개 갱도 외에 핵실험용 장비 설치를 위한 새로운 갱도를 굴착한 모습이 서쪽 지역에서 포착됐다. [사진 미국 상업위성 퀵버드]

 지난해 12월 김정일의 사망으로 권좌를 물려받은 김정은도 그 노선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체제 단속과 권력 안정화를 위해선 선택의 폭이 넓지 않기 때문이다. 대북 소식통들은 “북한이 지난해 여름부터 미사일 발사를 준비해 왔다”고 본다. 지난달 16일 인공위성 발사를 위한 로켓을 쏘겠다는 발표 이후 20여 일 만에 로켓 발사 준비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도 북한이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음을 보여준다. 김정일이 깔아놓은 레일 위에 김정은이 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벼랑 끝 전술’ 역시 김정일 때와 같다. 로켓 발사 자체만으로도 국제사회의 우려와 제재가 예상되는데도 핵실험까지 준비하는 것이 그렇다는 얘기다. 고유환 동국대(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자신들의 핵 소형화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잘 알고 있다”며 “핵 소형화를 위한 핵실험을 준비함으로써 로켓 발사에 대한 제재나 북·미 간 2·29 합의 파기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제 제재에 핵실험으로 맞불을 놓겠다는 계산된 행동이란 것이다.

 실제로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달 31일 “인도주의적 문제는 정치와 연관시키지 않겠다던 미국이 식량지원 공약 이행 중단을 선언한 것은 2·29 합의를 통째로 깨버리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조선신보도 3차 핵실험 가능성을 여러 차례 내비쳤다.

 한·미 당국은 곤혹스러워하면서도 단호한 입장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미 북한에 대한 제재가 이뤄지고 있어 마땅한 추가 제재 수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장거리 로켓 발사에 이은 핵실험은 북한의 ‘위성 발사’가 실제로는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은폐하기 위한 구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북한이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남북경협과 대북 지원을 중단한 5·24 조치를 완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국제적인 반발이 확산될 경우 북한이 실제 핵실험을 강행할지는 미지수라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온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준비가 돼 있다 해도 핵실험 버튼을 누를 때까지 어떤 변수가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며 북·미 간 극적인 협상 타결 가능성을 열어 뒀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북한은 축제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특히 장거리 로켓 발사 참관을 위해 CNN 등 외신들의 방북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로켓 발사를 구실로 외신들을 초청해 김일성 100회 생일을 전 세계에서 축하한다는 식으로 선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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