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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미 망명 물리학자 팡리즈 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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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팡리즈

“나는 중국인들이 그를 영원히 기억하길 바랍니다. 중국 역사에 이런 사상가가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인권과 민주를 일깨웠다는 사실, 그래서 머지 않아 중국은 그를 ‘국가의 자부심’으로 여길 겁니다.”

 중국 천안문(天安門) 민주화운동의 지도자였던 왕단(王丹)이 7일 중국 천체물리학자 팡리즈(方勵之)의 부인 리수셴(李淑.)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전한 애도사다. AP통신 등 외신은 중국의 대표적인 반체제 지식인이며 민주·인권인사로 통하는 팡이 7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시에서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76세.

 1936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그는 16세 때인 1952년 베이징대학 물리학과에 입학, 이론과 핵 물리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레이저 분야 이론을 개척한 과학자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연구활동에 매진하면서 당시 중국의 열악한 인권상황에 개탄했다. 특히 문화혁명(1966~1976년) 기간 중 대학에서 쫓겨나 농촌에서 거주하면서 인권의 참상을 보고 인권과 민주운동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안후이(安徽)성 허페이에 있는 중국과학기술대학 부학장으로 있던 1986년 12월 중국 전역에서 대학생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자 이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듬해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인 덩샤오핑(鄧小平)의 지시로 그는 당에서 제명당했다. 그러나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시위가 발생하자 팡은 학생들의 행동에 지지를 표명했고 시위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팡의 지지로 당시 학생지도부는 힘을 얻었으나 중국 당국의 강경 유혈진압을 부른 계기 중 하나가 됐다는 평가도 받고있다. 이후 중국 대학생들 사이에서 팡은 ‘청년의 지도교수’로 회자됐다.

 천안문 민주화운동 이후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선풍이 일자 그는 부인과 함께 주중 미국대사관으로 피신했다. 당시 미국과 중국간 망명 협상은 13개월을 끌었으며 미국은 이들 부부를 군용기에 태워 영국으로 보내 6개월 머물게 한 뒤 미국 망명을 허용했다. 그는 애리조나대학에서 물리학 교수로 20년간 재직한 후 퇴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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