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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구의 서울 진(眞)풍경 ⑥ 서대문 화양극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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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서울 미근동 옛 화양극장 내부. 시사회 공간으로 쓰였던 ‘드림시네마’ 시절 라운지 풍경이다. 오드리 헵번·제임스 딘·저우룬파(周潤發·주윤발) 등 실물 크기의 스타 사진이 손님을 맞는다. 파노라마 기능으로 여러 장을 찍어 이어 붙인 사진이다. [사진 조정구]

서울 화양극장은 오늘도 그늘져 있다. 고가너머 먼 북쪽을 바라보며 서대문 사거리에 서 있다. 빙글빙글 차들이 돌아가던 로터리도 사라지고 이웃한 동네들은 없어지거나 높은 빌딩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스산한 바람 속에 극장 아래 가게들 사이로 ‘철거’라고 쓴 빨간 글자들이 보인다.

 지난달 31일 토요일 오전, 어르신들이 서둘러 극장으로 들어온다. 상영작은 ‘영광의 탈출’(1960). 오토 프레밍거 감독, 폴 뉴먼·에바 마리 세인트 주연의 210분짜리 대작이다. ‘주말의 명화’에 흘러나오던 그 음악이 바로 이 영화의 테마곡이다.

 매표소에서 표를 산다. 노인은 2000원, 일반은 7000원이다. 계단을 오른다. 끝에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펼쳐지듯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라운지다.

바로 보이는 매점 카운터에서 아주머니들이 방금 뽑아 온 따끈한 가래떡을 팔고 있다. 1000원에 한 뼘 만한 것 3개를 준다. 뒤를 돌아보면 200원짜리 미니커피자판기에, 양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2층 라운지에 오르면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여 기분이 좋다. 라운지 한 쪽 창으로 나른한 빛이 들어오고,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무심하다.

서대문 사거리에서 본 화양극장. 극장 아래에는 10여 개의 가게가 들어있다.

 1964년 신정연휴에 ‘단장록’(감독 임권택)을 상영하며 화양극장은 문을 열었다. 707석짜리 재개봉관이었다. 그때 대한극장은 2000석에 가까웠다.

전성기는 80년대에 찾아온다. 홍콩영화를 독점 개봉하면서 486세대는 익히 들어보았을 ‘예스마담’ ‘천녀유혼’ ‘영웅본색 1·2’ 등 굵직한 화제작을 연이어 흥행시켰다. 하루 3000명이 넘으면 만원사례였던 당시, 심야까지 7회분이 모두 매진 돼고, 표를 구하지 못한 관객들의 항의로 새벽 2시에 추가편성을 해야 할 정도였다.

 ‘영웅본색’을 상영하던 때에는 극장이 있는 블록을 몇 바퀴나 돌며 줄을 서 기다리는 행렬이 있었단다. 내로라하는 홍콩의 주연배우들이 개봉에 맞추어 ‘홍콩영화 3대 개봉관’이라 불리던 서대문 화양, 영등포 명화, 미아리 대지극장을 순회하며 인사하기도 했다. 90년대 들어 홍콩영화의 인기는 시들해지고, 시내 곳곳에 멀티플렉스가 등장하면서 화양극장은 쇠락의 길을 걷는다. 98년 시사회 전용극장인 ‘드림시네마’로 이름을 바꾸어 낮에는 재개봉 영화를 상영하고, 밤에는 시사회를 열었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갈 무렵 재개발 소식이 밀려왔다.

2007년 드림시네마 김은주 대표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더티댄싱’(1987)을 문 닫는 그 날까지 상영하기로 했다. 80년대 풍으로 극장을 꾸미고 손으로 그린 옛날식 간판을 달며 마지막 작별을 준비했다. 다행히 철거의 ‘그 날’은 오지 않았다. 몇 년의 유예기간이 생기면서 ‘미션’(1987) ‘영웅본색’(1986) 등 지나간 명작을 상영하며 그 명맥을 이어갔다.

 2009년 5월 ‘서대문 아트홀’이란 이름으로 연극·뮤지컬·콘서트·시사회 등을 하는 다목적 공연문화공간으로 변모를 시도했다. 좌석도 650석으로 여유 있게 배치하는 등 여러 노력을 하지만 1년 만에 문을 닫고 ‘청춘극장’이란 새 이름을 얻는다.

청춘극장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노인전용 상영관이자 문화공간으로 10월 2일 노인의 날에 맞추어 문을 열었다.

486세대의 젊음을 상징하던 ‘더티댄싱’이 스크린에서 내려오고, 이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 같은 어르신들의 ‘청춘시대’ 명작이 올라오고 있다.

 그 동안 화양극장에서 보았던 영화와 추억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추운 겨울, 바깥 온도와도 그리 차이가 없던 상영관에서 열 명도 안 되는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 앉아 떨며 보았던 영화 ‘미션’, 노인들 속에 혼자 들어가 우리 영화 ‘소나기’를 보고 여자아이 역을 한 배우 조윤숙이 실은 나와 동갑이란 사실에 은근히 가슴 설렜던 기억, 그리고 몇 년 뒤 영화의 재미를 알기 시작한 큰 아들 남우와 같이 본 ‘영광의 탈출’까지…. 비록 극장의 전성기를 보진 못했지만, 그 동안 정이 많이 쌓인 듯하다.

 서울시는 최근 이 자리에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관광호텔을 짓는다고 사업시행인가를 고시했다.

‘굿바이’라지만, ‘안녕, 잘 가, 다음에 또 만나’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에 점점이 아쉬움이 남고, 마음 한 켠이 저며 온다. 바쁘고 영민한 도시 생활 속에 ‘오래된 영화관 하나쯤’ 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 서울에 마지막 남은 단관극장을 보내는 마음은 편치 않다.

 수많은 극장이 창고가 되고, 고시원이 되고, 상가가 되어 사라졌어도 화양극장만은 끝까지 극장의 소명을 다해 왔다. 사람의 생이라면 부럽기도 하다. 마지막 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 찾아가 환송의 인사를 나누면 어떨까? “굿바이 화양극장. 잘 가, 고마웠어…”라고.

◆조정구(46)=건축가. 2000년 구가도시건축 설립. ‘우리 삶과 가까운 일상의 건축’을 화두로 삼고 있다. 대표작으로 서울 가회동 ‘선음재’, 경주 한옥호텔 ‘라궁’ 등이 있다. 2007년 대한민국 목조건축 대상을 받았고, 2010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 한국관 작가로 참여했다. 서대문 한옥에서 4남매를 키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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