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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마이 라이프] 주말엔 춤추러 서울가는 56세 김경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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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김경란씨가 산조가락에 맞춰 입춤을 추고 있다.

“사람들이 살면서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것 아니야’라는 얘기를 쉽게들 하지요. 하지만 우리 인생에 늦은 때는 없습니다.”

 27일 전북 전주시 덕진동 법원 앞의 ‘산조 전통무용 연습실’. 딸 나이 또래의 젊은 춤꾼들 사이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김경란(56)씨는 “춤이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 없다”며 “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시작하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그가 춰 보인 춤은 입춤. 가야금·대금의 산조가락에 맞춰 수건을 감아 돌리고 잡아챘다가 다시 허공에 뿌리는 우아한 모습을 연출했다. 두발을 사뿐사뿐 내딛는가 하면, 때로는 까치발로 종종 걸음을 치기도 했다. 함께 연습을 하던 정읍사국악단원 김연실(39)씨는 “김 선생님의 춤사위는 소녀처럼 곱고 순수하면서도 20~30대보다 훨씬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친다”고 말했다.

 김씨는 불혹의 나이 40세 때 춤바람이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초등학교시절 잠깐 무용 학원을 다닌 적은 있지만 중학교 진학하면서 춤과는 멀어졌다. 전주여고를 거쳐 한양대 가정대학을 졸업하고 27세 때 결혼했다. 공부하는 남편(황근창·57·원광대 반도체디스플레이학과 교수)을 따라 미국에 가 10여년을 머무르기도 했다.

 2남1녀를 뒷바라지하면서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던 그가 춤판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은 아이의 자모회에 참여하면서다. 중학교에 다니던 큰딸의 학교 축제무대에 엄마들이 함께 공연을 하기로 약속을 하면서 가야금을 잡았다. 이를 계기로 전주시 덕진동에 있는 전북도립국악원의 한국춤 교실에 등록했다.

 뒤늦게 시작한 춤은 초등학교 이후 가슴 속에 숨겨뒀던 열정에 불을 댕겼다. 아침에 나가 저녁까지 종일 국악원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춤뿐 아니라 가야금·장고까지 열심히 배웠다. 특히 춤은 살풀이·산조·부채춤·소고춤·한량무 등 거의 전분야를 섭렵했다. 주변에서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그 나이에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다.

 “조지훈 시인의 ‘승무’라는 시에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는 표현이 나와요. 한데 춤을 추다 보면 그처럼 아득한 번민과 스트레스가 어느 순간 날아가 버립니다. 가슴 속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이 차오르면서 세상이 온통 내 것처럼 여겨져요.”

 춤을 더 배우고 싶어 2010년에는 원광디지털대학 전통공연예술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주말엔 어김없이 서울행 고속버스를 탄다. 사당동에 있는 대학의 무용센터에서 연습하기 위해서다. 방학 때면 1~2주씩 임실에 있는 필봉농악마을로 가는 연수도 빠짐없이 참가한다. 내년에는 그 동안 배운 것을 결산하는 뜻에서 개인작품 발표회를 가질 계획이다.

 김씨는 “춤은 아이부터 노년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전신운동 ”이라며 “실기는 물론, 이론 공부도 열심히 해 기회가 되면 후학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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