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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사미 된 행정구역 개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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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윤창희
사회1부 기자

2009년 6월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 사회를 도약시킬 수 있는 ‘근원적 처방’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으로 수세에 몰리고 있던 집권 2년차 대통령의 발언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내용을 두고 여러 추측이 나왔지만 가장 유력한 것 중 하나가 행정구역 개편이었다. 두 달 뒤 8·15 경축사에서 이 대통령은 이 문제를 공식 의제로 던졌다.

 대통령의 의지도 여야로 쪼개진 국회의 벽을 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야당조차 “우리도 10년간 준비해 온 사안”이라며 찬성하고 나섰다.

 행정구역 개편론은 학계에서는 이미 연구가 많이 된 사안이다. 16개 시·도와 228개 시·군·구를 통합해 인구 50만~70만 명의 광역자치단체 60~70개로 행정판을 다시 짜자는 내용이다. 조선 말에 만들어진 지방자치구역이 100년을 넘기면서 현실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이중 삼중의 지방자치단체를 단순화하면 행정 낭비를 줄이고 불필요한 지역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3~4㎞ 떨어진 곳에 시청이 모여 있는 안양·군포·의왕의 포도송이 같은 분포나 특정 행정구역을 인접 지역이 감싸고 있는 전주·완주, 청주·청원의 도넛형 입지는 대표적인 비능률 사례로 거론된다.

 이런 광범위한 공감대 속에 2009년 국회 특위가 출범했지만 각론을 놓고 삐걱대기 시작했다. ‘도 폐지’ 같은 핵심 의제는 논의조차 못 했고, 이 대통령도 별다른 리더십을 보여 주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6개 시·군·구를 통합 대상으로 발표하고, 이틀 뒤에는 두 지역을 제외하며 갈팡질팡했다. 안상수 대표가 자신의 지역구(의왕)가 통합 대상에 포함된 데 반발하면서 판이 흐트러진 것이다. 한때 여야가 의견을 모은 자치구 의회 폐지도 흐지부지됐다. 이렇게 해서 2010년 10월 만들어진 특별법은 민간 위원 위주로 구성된 ‘지방행정체제 개편추진위’가 시·군·구 통합방안을 마련해 보고하라는 ‘맥 빠진’ 결론으로 끝났다. 그나마 보고 시한도 18대 국회 임기 종료 두 달 뒤인 올해 6월이다.

 이 시한을 맞추기 위해 위원회가 지금 통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19개 지역 48개 지자체가 심사 대상이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시·군·구 통합이라는 난제가 추진 동력을 얻기는 어렵다. 위원회 토론은 활기를 잃었다. 통합에 반대하는 시의회와 지역사회단체들은 요란한 반대 플래카드를 걸고 있다.

 결국 행정구역 개편은 18대 국회에서도 용두사미가 될 판이다. 그래도 희망은 버리지 말자. 19대 국회 개원과 올 연말 대선을 새로운 논의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교통·통신의 발달과 늘어나는 복지재정 수요를 감안할 때 행정구역을 광역화하는 작업은 필요하다. 그리고 이 개혁은 국회와 정권이 막 출범할 때 추진되지 않으면 기득권의 저항을 뚫을 수 없다. 갑오개혁과 광무개혁 때 ‘냇가와 강가를 따라’ 만들었다는 행정구역을 미래의 100년에도 유지하는 비능률과 모순을 이제는 끊을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