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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미소금융 관련법 국회서 1년 넘게 낮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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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신헌철
SK 미소금융재단 이사장

2006년도 노벨 평화상은 방글라데시의 유누스 교수가 받았다. 1974년 ‘그라민뱅크’를 세워 저소득층에 대한 소액금융을 개발해 서민 삶의 질을 높인 공로였다. 그는 그라민뱅크를 통해 서민층을 위한 무담보·무보증, 낮은 이자의 소액대출사업을 성공시킴으로써 세계적인 사회적 기업가의 롤모델이 됐다.

 한국도 2008년 9월부터 휴면예금(7000억원)을 재원으로 소액대출사업을 시작했다. 2010년부터는 여기에 6대 기업이 1조원, 금융권이 5000억원을 보탰다. 이게 바로 미소금융사업이다. 지난 1월 말 기준으로 6만800건, 약 5100억원이 무담보·무보증 또는 연 2~4.5%의 낮은 이자로 저소득층 자영업자들에게 대출됐다. 자활의지는 있으나 담보도 없고 신용등급도 낮아 제도권 금융으로부터 대출받기가 어려운 영세사업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미소금융은 자칫 대출자의 도덕적 해이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초기의 우려를 씻어 내고 제대로 뿌리내리고 있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가슴 아픈 수많은 사연을 머리에 이고,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밑바탕 생업터에 미소금융은 그 가녀린 뿌리를 내리고 움을 틔워 온 것이다.

 전국에 걸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550만 명에 이르고 그중에서도 고용불안·경기하락·명예퇴직·조기퇴직 등으로 직장에서 물러난 생계형 자영업자들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신규 창업의 80%를 차지하는 생계형 창업이 3년 이상 유지되는 생존율은 53%에 불과하다. 이들의 수입도 과거보다 많이 줄어든 월평균 150만원 이하로, 이는 임금근로자 평균 소득의 54% 수준이라는 통계가 있다.

 한편에서 전국의 가계부채는 5년 새 50% 가까이 늘었다. 2006년 650조원이던 것이 지난해 912조원에 이르자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막바지 수준’인 1000조원조차 넘어설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이에 따라 가계부채를 억누르기 위한 각종 대출 규제가 강화돼 저소득층 자영사업자들은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시중은행 대출이 규제되면서 이에 따른 풍선효과로 인해 보험사나 저축은행 같은 쪽에 신용이 낮고 담보가 부족한 수요자가 몰렸고, 이로 인해 가계부채의 질은 더욱 악화됐다. 여기에 제2금융권에 대한 각종 규제까지 강화되면서 자칫 영세사업자와 서민들이 불법 사채시장에 내몰릴 위험이 높아졌다. 이에 정부는 저소득층 자영사업자들을 위한 미소금융의 역할이 증대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확대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년 동안 미소금융을 설립·운영하면서 일선 현장에서 얻은 경험에 비춰 볼 때 미소금융의 발전적 확대를 위해 다음과 같은 사항이 고려돼야 할 것이라고 본다.

 첫째, 단순히 대출 규모를 늘리기 위한 제도 변경보다는 실효적인 보완책이 더욱 필요하다. 미소금융 대출 규모가 햇살론(21만 건, 2조원)이나 새희망홀씨(20만 건, 1조7000억원)에 비해 약 4분의 1에 불과하다는 식의 단순 비교는 바람직하지 않다. 보증이 있어야 하는 데다 연이율이 10~14%에 이르는 햇살론·새희망홀씨가 대출자에게는 미소금융보다 훨씬 불리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으로 대출이 일어난 것에 대한 해석이 미소금융정책에 반영돼야 한다.

 둘째, 미소금융 재원을 확대하기 위해 정부·기업·금융권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미 참여하고 있는 6대 기업과 은행권 외에 새로운 법인과 개인들도 각각의 사업 역량에 맞춰 적은 재원으로 몇 개씩의 지점이라도 운영함으로써 사회 공헌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셋째, 미소금융에 대한 효과적인 공익 홍보가 강화돼야 한다. 애초부터 미소금융은 사회적 기업 차원에서 하는 일이므로 유료 광고를 하기가 어렵다. 또 생업에 바쁜 저소득층 영세사업자들이 이런 매체 광고에 접근할 여유와 기회도 부족하다. 따라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조직은 아직도 이 제도를 모르는 많은 영세사업자에게 미소금융을 적극 알릴 방도를 찾아야 한다.

 넷째, 1년이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인 관련 법안이 조속히 처리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시설과 기업의 유휴시설 등이 미소금융 장소로 저렴하게 이용될 수 있어야 한다. 서민들이 가기 쉬운 공공장소를 이미 미소금융에 활용하고 있는 대전·울산, 강원도 동해, 충남 서산, 경북 울진, 경남 통영, 제주도 등지의 사례가 더욱 확산돼야 한다.

 초기의 어려운 환경을 헤치고 영세사업자들의 생업터에 뿌리를 내리며 새 움을 틔운 미소금융이 가녀린 가지 끝에 꽃을 피워 내면 어느 시인을 노래한 또 다른 시인의 시처럼 ‘눈 먼 이의 언 손 위에 가만히 제 장갑을 벗어두고 와도 손이 따뜻한’ 아름다운 세상이 더 빨리 올 것 같다.

신헌철 SK 미소금융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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