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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혼자 생각하던 비전…직원과 공유하니 ‘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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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에스에이티 소진석 대표는 “컨설팅을 통해 침체된 조직 분위기에 활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에스에이티 본사 공장에서 직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김대준 설계부 대리, 성경미 영업부 대리, 허애란 관리부 주임, 소진석 대표, 형성복 설계부 차장, 임경숙 관리부 이사. [안성식 기자]

디스플레이 생산 장비를 만드는 에스에이티(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의 소진석(45) 대표. 그는 지난가을 가벼운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회사가 계속 굴러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어요. 뭐가 문제일까 생각하면 잠도 안 왔고요….”

 창업한 지 9년. 회사는 파죽지세로 성장했다. 2007년 70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550억원으로 늘었다. 모두들 “탄탄히 자리 잡았다”고 했지만 소 사장은 속이 타들어갔다.

 “2007년 대만·일본 쪽 수출 판로를 뚫으면서 매출이 늘었지요. 이제 할 만하다 싶으니까 회사 내부가 삐걱거리는 거예요.”

 회사가 커지며 직원은 10명에서 40여 명으로 늘었다. 기존 창립 멤버와 새로 영입한 직원이 종종 마찰을 일으켰다. 급기야 2009년 창립 멤버 셋이 한꺼번에 회사를 그만뒀다. 따로 독립해 회사를 차린 것이다.

 소 대표는 당황했다. 그제야 조직 문화가 눈에 들어왔다. “회식 때 직원 사이에 서먹한 벽이 있다고 느꼈어요. 뭔가 활력도 없고요….” 컨설팅을 권유한 건 거래하던 IBK기업은행의 지점장이었다. 서정효 기업은행 컨설턴트가 지난해 9월 회사를 찾았다. 소 대표는 “내 이름만 빼고 다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서 컨설턴트는 본사 인근에 숙소를 잡고 5주간 회사로 출근했다. 직원을 한 명씩 만났다. 최소 두세 시간씩 대화를 하며 고충과 불만을 들었다. 직원의 고민은 대강 이랬다.

 “회사 비전이 안 보인다. 디스플레이 장비 시장이 포화 상태인데 어떤 신사업을 준비하는지 모르겠다” “새로 영입한 직원만 좋은 대우를 해주는 것 같다. 정작 고생한 건 초기 멤버인데 알아주지 않는다” “부서 간에 소통이 부족하다. 새로 제품을 주문받아도 정확한 주문 사양을 알려주지 않는다” 등등.

 실제로 제대로 된 평가 시스템도, 부서 간 소통 통로도 없었다. 1년 중 10개월을 중국에 나가있는 직원을 한국에 앉아서 평가하는 식이었다. 평가가 형식적이니 보상 체계도 다들 수긍하질 못했다. 부서 간 소통 부족은 비용 낭비로 나타났다. 영업부서가 받은 제품 수정·개선 사항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불필요한 자재를 사거나 다시 설계를 하는 일이 잇따랐다. 이로 인해 낭비되는 비용만 연간 4억원 정도로 진단됐다.

 내부 진단 결과를 받아본 소 대표는 충격을 받았다. “항상 장기 계획을 세우는 게 습관이라 10년 뒤 비전은 또렷하게 세우고 있었어요. 임원에게 종종 얘기해 직원도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소 대표는 당장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일하는 순서를 바로잡았다. 영업팀이 주문을 받으면 바로 ‘수주 설명회’를 열어 정확한 정보를 모든 부서가 공유하게끔 했다. 또 설계도면 관리 시스템을 만들고, 성과·보상 체계를 정비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해 12월 23일엔 비전 선포식을 열었다. “새 사업 분야를 개척해 10년 안에 1조원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성장시키겠다”고 밝혔다. “내년쯤 기업 공개를 하겠다. 그동안 고생한 직원들에게도 열매가 돌아갈 것”이라며 희망도 심어줬다.

 직원도 변했다. 한 해 5명 안팎으로 “이직하겠다”는 직원이 생기기 일쑤였지만 컨설팅을 받고 난 지금까지 한 명만이 회사를 그만뒀다. 직원이 먼저 나서 “업무 영역이 모호한 부분을 정확히 나누자”며 자발적으로 회의를 열기도 한다. 기술연구소 신영일(31) 대리는 “예전엔 싸움이 날까봐 업무 영역이 불분명해도 대화를 안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업무 영역이 명확해지니 오히려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다”고 말했다.

 소 대표는 “컨설팅을 받은 뒤 회식 장소가 시장판처럼 시끄러워진 걸 보고 조직에 활력이 생겼다는 걸 느낀다”며 “내년에 과연 상장할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이제 자신이 생긴다”고 웃었다.

특별취재팀=나현철·김선하·임미진·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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