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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병 5년' 배우 강신일 "격한 등산 후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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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배우 강신일은 간암 발병 5년째를 맞고 있다. 강신일은 간암 수술 후 충북 괴산군 칠보산 산골마을에서 6개월을 보냈다. 산의 정기 덕분일까, 암세포가 그의 통제 아래에 있다. 강신일이 오랜만에 삼청공원을 찾아 철봉을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암에 걸려도 여자 환자의 58.9%가, 남자는 39.2%가 10년 이상 산다. 국립암센터가 1999~2007년 국가 암 등록통계에 등재된 환자 105만4683명을 분석한 결과다. 93~98년 발병 환자(남자는 29.5%, 여자는 50.5%)보다 생존율이 크게 올라갔다. 암센터가 10년 생존율을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위·대장·유방·전립샘·갑상샘암은 높고 간·폐·췌장암은 낮은 편이다. 유방암·난소암을 겪은 김모(57·여·서울 종로구)씨는 오뚝이다. 14년 동안 암 세포가 찾아올 때마다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섰다. 김씨는 “암은 치료 잘 받고 잘 관리하면 살 수 있는 병”이라고 말한다.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북악산 자락 삼청공원. 걷고, 뛰고,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 사이로 그가 걸어왔다. 배우 강신일(52)이다. 스크린 저편에서 낮게 깔리던 예의 그 깊고 단단한 목소리로 그가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그는 배우다. 대학로 무대에서 연기자로 잔뼈가 굵었고 불혹의 나이에 충무로와 방송국 삶을 시작했다. 이날도 새벽까지 JTBC 드라마 ‘발효가족’ 촬영을 끝내고 왔다. 하지만 그는 피곤한 내색 없이, 시종일관 차분하고 겸손했다. 그러면서도 연신 턱을 만지작거렸다. 여느 때처럼 작품 홍보를 위한 인터뷰가 아니어서 어색하다고. 극 중 배역이 아닌 강신일 자신의 삶을, 그것도 암의 흔적을 내보이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강신일은 올해로 5년째 암과 싸우고 있다. 2007년 간암 판정을 받고 간의 3분의 1을 잘라냈다. 수술 이후엔 6개월간 충북의 한 산골 마을에 들어가 살았다. 삶의 끈이나 다름없는 연기가 그리워 서울로 돌아왔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암이 전이될지도, 재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그런데도 그는 “암에 감사한다”고 했다. 갑자기 찾아온 ‘손님’ 덕분에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연극이 전부였던 20년

그는 1980년부터 연극에 미쳤다. 경희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지만 공부는 뒷전이었다. 대학로에서 살다시피 했다. 극단 ‘증언’을 만들어 군인·한센인·환자 등 소외된 사람들 앞에서 무대에 올랐다. 87년 연우극단의 창작극 ‘칠수와 만수’로 대학로 연극 붐의 중심에 섰다. 옥외광고 페인트공에 대한 편견과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그린 작품이다. 여기서 그는 만수로, 문성근 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은 칠수로 무대에 올랐다. 사회 문제를 소재로 한 창작연극의 뿌리 같은 작품이다. 그는 “예전엔 사상가나 철학자, 종교인이 인생의 가치를 깨닫게 해줬다면 요즘엔 배우가 그 역할을 하는 것 같다”며 “연극은 공동체와 소통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가 연극에 몸을 던진 이유다.

무대에서 땀 흘린 뒤 극단 사람들과 삼청공원에 몰려와 술과 이야기로 밤을 새웠다. 아프게 타오르던 시절이었다. “연극에 열정을 다 쏟고 살다가 죽어도 행복할 것 같았어요. 너무나 이기적인 생각이었죠. 가족들에게 정말 못할 짓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요.”

건강 관리는 우스운 얘기였다. 먹는 걸 밝히는 게 사치라고 생각했으니까. 경제 관념도 없었다. 돈이란 적당히 먹고, 입고, 이동하는 데 필요한 정도만 있으면 됐다. 그렇게 99년까지 연극판에서 20년을 살았다. 쉰을 넘긴 이제야 강신일은 말한다. “생활 불규칙하지, 제때 영양도 공급해 주지 않지… 수십 년 학대받은 몸에 탈이 안 날 리 없지요.”

“내가 암, 암이라니”

강신일의 도시락. 잡곡밥, 삶은 양배추와 브로콜리, 감태전, 가지·고사리 등 나물이다. 그의 아내가 인공조미료와 소금을 쓰지 않고 만들었다. 보온병의 물은 동료 배우 정원중씨가 칠보산에서 따 준 겨우살이 나뭇가지를 끓인 것이다.

 결혼 후 B형간염에 걸린 사실을 알았다. 아내와 “매년 건강검진을 잘 받겠다”는 약속을 했다. 한때 건강검진에서 간 수치가 빠르게 올랐다. 이상 신호가 왔지만 ‘좀 쉬면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넘기고 또 넘기고…. 그래도 건강검진을 거르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의사가 처음에는 2년에 한 번 보자고 하더니 점점 짧아졌다. 나중에는 6개월마다 검진 날짜가 돌아왔다.

 그런 그에게 강력한 경고가 왔다. 2007년 8월, 한창 영화와 TV드라마에서 잘나갈 때였다. 셋째 딸 출산을 앞두고서야 영화에 눈을 돌린 그였다. 강우석 감독의 영화 ‘공공의 적’에서 설경구와 티격태격하는 강력반 엄반장 역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이후, 영화와 TV드라마 촬영이 눈코 뜰 새 없이 이어졌다. 집에서 갑자기 구토를 했다. 살이 쭉쭉 빠졌다. ‘술을 좀 줄이면 괜찮아지겠지’.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여전히 연기가 생활의 중심이었다. 양을 따져본 적이 없을 정도로 술을 좋아했다. 담배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한 시간마다 깨는 불면(不眠)의 밤이 계속됐다. 그렇게 두어 달을 흘린 뒤에야 병원을 찾았다. 뜻밖의 소식. 의사는 “간에 종양이 보인다”고 했다. 머리가 멍해졌다. ‘암, 암이라고? 우리 딸들은 어쩌나. 하고 싶은 연기도 아직 많은데 어쩌라고…’.

 할 말을 잃은 그에게 아내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담배나 한 대 피워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아내는 참 의연했다. 두 달 후 2007년 12월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다.

오! 나의 예쁜 암세포

갖가지 검사를 받은 후 “수술이 가능한 상태”라는 의사의 말에 안도했다. 길이 3cm짜리 암 덩어리 때문에 간의 3분의 1을 잘라냈다. 그는 “수술할 수 있게 한 군데 모여 있던 암세포들이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처음엔 두렵다가도 ‘겨우 3cm잖아’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의사는 몇 기(期)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묻지도 않았다. 지금도 모른다.

 수술할 무렵에 드라마 ‘황금신부’를 찍고 있었고 영화 ‘강철중’ 촬영을 앞둔 때였다. 강우석 감독에게 “간암 수술 날을 받았다. 에너지를 다 쏟을 자신이 없다.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고 말했다. 본인 때문에 영화를 미룰 수도, 망칠 수도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 감독은 “다른 사람에게 이 배역을 맡길 수 없다”며 “몸이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를 믿고 기다려주고 찾아준 사람들의 신뢰 위에서 그는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 후 2주 만에 그는 촬영장으로 향했다. 시청자와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고집 때문이었다. 아물지 않은 수술 부위를 복대로 동여맨 채 이를 악물었다. 영화 ‘강철중’ 촬영을 마치자 2008년 4월이었다. 촬영 후 마음이 홀가분해졌지만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그는 돌연 “산으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TV도, 컴퓨터도 없는 곳에서 면역력을 키우고 싶다”고.

칠보산의 6개월

산을 생각한 이유는 서울에서 도저히 건강을 지킬 자신이 없어서다. 극심한 불면증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는 밤에 아파트 위층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여름날 밤 취객들 고함소리에 밤새 몸을 뒤척였다.

 그래서 찾은 곳이 충북 괴산군 칠성면의 칠보산이다. 친구이자 배우인 정원중(52)이 칠보산 자락의 마을에 집을 짓고 살았다. 그가 자기 집 별채에서 살자고 권했다. 연기에만 미쳐 살아온 28년의 삶에 그제야 쉼표가 생겼다. 텃밭에서 직접 기른 상추·고추에다 미나리·민들레 나물·가지를 넣고 끓인 된장찌개에 현미밥을 먹었다.

 28년 만의 대본 없는 생활은 심심했다. 주 1회 서울 나들이 때 카세트·CD·기타를 챙겼다. 노래를 부르면 암 치료에도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그리고 가수 고(故) 김광석이 떠올랐다. 극단 학전 시절부터 아끼던 후배였다.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대 마음에 다다르는 길

찾을 수 있을까 언제나 멀리 있는 그대

기다려 줘, 기다려 줘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김광석의 ‘기다려 줘’ 중에서)

기타를 치며 부른 그 노래는 예전의 그 노래가 아니었다. “남녀 간 사랑 얘기가 아니었어요. 내가 지금 암 때문에 산속을 헤매고 있지만 그동안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가족, 친구, 동료들… 내가 돌아갈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싶은 내 마음이었죠.”

 어느 날은 보고 싶은 후배에게 무작정 전화해 노래를 불렀다. 차분하다 못해 침울하던 성격이 차츰 밝아졌다. 연기에 대한 스트레스, 암에 대한 두려움…. 불안이 조금씩 사그라졌다.

매일 도시락을 들고 산을 찾았다. 4~5시간 해발 800m 산을 오르내렸다. 거친 숨을 내쉴 때마다 몸이 나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격한 운동으로 체력을 키워야 암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강신일은 이날 인터뷰에서 “그때 등산을 후회한다”고 말한다. 그는 “얼른 건강을 되찾아야 한다는 조바심에 어리석은 행동을 한 것”이라며 “간에 무리가 가는 운동을 해서는 안 됐다”고 말한다. 요즘은 스트레칭을 하거나 가벼운 산책을 한다.

돌아온 서울, 암이 앗아간 사람들

 6개월 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가족이 그리웠다. 몸이 맑아지면서 다시 세상에 나가야겠다는 의지도 살아났다.

 변화는 몸을 아끼면서 시작됐다. 현미잡곡밥, 유기농 채소로 만든 무염식(無鹽食) 반찬으로 하루 세끼를 챙겼다. 암 선고 직후 빠져든 일본의 대체요법과 식이요법 치료에 관한 책들의 영향이 컸다. 동료 배우들이 식당으로 향할 때 그는 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는다. 며칠씩 지방 촬영을 갈 때는 보온밥통에 밥을 따로 가져간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주말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배추와 무로 김장을 하고, 봄에는 시금치·부추·깻잎 농사를 짓기도 한다. 강신일은 “내가 먹을 것을 직접 기르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라며 웃는다. 먹는 것을 사치라 여기던 그의 달라진 모습에 사람들도 놀란다.

 그가 살기 위해 기를 쓰는 동안 암은 주변을 맴돌았다. 연극 연출가이자 배우이던 후배 박광정이 폐암 선고를 받았다. 1년간 짧은 투병을 마치고 박씨는 떠났다. 강신일은 “나 혼자 살았다는 생각에 숨이 막혔다”고 했다. 그리고 또 2년이 지난 2010년, 친형마저 암 진단을 받았다. 그와 같은 간암이었고, 말기였다. 뼛속까지 번진 암세포는 형을 앗아갔다. 연기에 빠진 동생 대신 집안의 대소사를 혼자 책임지던 형이다. 그는 “나 때문에 형이 돌아가신 것 같다”며 목이 멨다.

강신일은 이제야 ‘삶의 리듬’에 눈을 떴다. ▶건강한 식단 ▶질 높은 수면 ▶사람과 일(연기)에 대한 애정이다. 그는 거짓 없는 열정을 매일 되새긴다. 매주 동서울대학에서 연기 강의를 한다. 암 투병 중에도 중단하지 않았다. 연기인생 2막을 준비하는 스펙 쌓기가 아니다. ‘반성의 시간’에 가깝다. “젊은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죠. 연기에 대한 허세는 내 인생을 무너뜨리는 일이니까요.”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요즘은 내리 3~4시간씩 잔다.

“암은 신의 손길”

평생 배우로 살아온 그는 지난해 처음으로 연극기획자로 나서 ‘강신일과 여우’라는 작품을 기획했다. 그 수익금은 저소득층 어린이들에게 기부했다. 모두 암이 가져온 변화다.

 “나는 대단한 스타도, 많이 알려진 배우도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뭔가 기여하고 기부하기엔 힘이 부치지만, 이 기획 연극이 이익을 내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KT의 쿡TV 명품 연극이라는 메뉴에서 강신일의 연극을 선택하면 결제금이 저소득층 어린이 문화 지원에 쓰인다. KT에서 받은 100만원도 그가 8년째 홍보대사로 있는 자살예방단체 ‘생명의 전화’에 기부했다.

 강신일은 말한다. “이제는 암에 감사해요. 암은 스스로를 혹사하며 교만했던 나에 대한 신의 손길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는 간암 이후, 자신의 연기도 달라졌다고 믿는다. 함께 울어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연극만 하다가 죽어도 좋다 여겼던 오만함이 부끄럽다.

 “암을 계기로 상대에 대한 배려, 이해, 관심의 힘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더 깊이 소통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암 수술 후 만 5년이 되는 올가을, 그의 두 번째 연극이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간암과 싸우는 배우 강신일, 삶의 원칙

금연(禁煙)과 금주(禁酒), 술 마시지 않고도 재밌게 즐길 방법은 많다

하루 세 끼 식사를 거르지 않는다

가능한 한 외식을 안 한다

직접 기른 채소와 유기농 식재료로 조미료 없이 요리한다

스트레칭·산책·족욕·반신욕으로 가볍게 몸을 푼다

얼른 나아야 한다는 조바심은 금물, 욕심은 스트레스가 된다

규칙적이고 질 높은 수면으로 정신을 맑게 유지한다

가족·친구·동료들에게 사랑하고 감사한 마음을 자주 표현한다

내 일(연기)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

더불어 사는 삶, 나누는 삶을 실천한다

▶'17년 암투병' 32세女 "암에 여러번 걸리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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