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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수 기자가 가봤습니다] 3년째 혁신학교 운영하는 해솔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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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손에 교칙 제정을 맡겼더니 학생자치활동이 더 엄격해졌다. 교무행정 전담 인력 배치로 교사들은 수업연구와 학생지도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재능을 발휘해 학교 교육에 참여하는 부모들도 늘어났다. 혁신학교를 운영하며 나타난 모습들이다. 하지만 그에 필요한 재정부담도 적지 않아 고민이다. 혁신학교로 지정돼 3년째 각종 교육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경기도 파주의 해솔중을 7일 찾아갔다.

파주 해솔중 문종석 교사가 ‘도전! 골든벨’ 형식을 차용해 모둠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문제를 많이 맞힌 모둠원에게 상품을 주며 관심을 끌었다.

옆 반 놀러가듯 짝지어 교무실 들러 질문

“좋은 아침입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매일 아침 8시 등교 시간, 학생회 임원 10여 명이 등교하는 친구와 선후배에게 허리를 숙이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학생주임 교사의 날카로운 눈길을 받으며 학생들이 긴장한 얼굴로 교문을 통과하는 다른 학교의 아침 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해솔중이 ‘교문 앞 검사’를 없애고 학생끼리 서로 인사를 나누며 하루를 시작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온 덕이다.

 수업 종이 울리자 교사들은 수업에 필요한 교구를 한아름씩 안고 교실로 향했다. 3학년을 가르치는 정승원 수학교사는 보조교사와 함께 교실에 들어섰다. 정 교사는 이날 배울 개념 이론을 설명하고 예제 문제만 풀어주는 것으로 강의를 마쳤다. 이어 학생들은 4~5명씩 모둠을 만들어 마주 보고 앉았다. 주어진 심화문제를 풀기 위해 서로에게 묻고 답하며 해결방법을 논의했다. 학생들의 수업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마련된 수업 방식이다. 3학년 안지은양은 “친구가 설명해주면 내 눈높이에 맞고 더 잘 이해돼 도움이 크다”며 “나도 빨리 잘해서 다른 친구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 수업에 더 집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교무실 모습도 달랐다. 학생들은 쉬는 시간에 옆 반 교실에 들어가 친구를 찾는 것처럼 편안하게 드나들었다. 임영미 교사는 “혁신학교는 교사와 학생들이 친해질 시간적 여유가 있다”며 “교사와 학생 간의 친밀함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교사들이 학생들과 교감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된 것은 행정전담 교사가 배치돼 교원업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해솔중은 혁신학교로 선정돼 앞으로 4년 동안 해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1억~1억5000만원을 지원받고 있다. 교무행정전담팀이 수업 지도 교사를 대신해 공문 작성에서부터 전·입학 서류 처리, 교과시간표 작성, 학교 홈페이지 관리 등을 맡고 있다. 교사는 수업 연구와 학생 지도에만 전념하고 있다. 이 학교 정권용 교장은 “교무행정 전담팀을 유지하려면 예산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는 수업의 질과 관련되므로 혁신학교가 끝나도 예산을 확보해 전담 인력을 유지해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학생회 스스로 규칙 정하고 무감독 시험

해솔중 학생회 규정은 학생들 스스로 만들고 시행한다. 교사나 부모의 간섭이 일절 없다. 학생들의 머리 모양과 복장에 대한 규정도 학생회 회의를 거쳐 학생들이 모두 결정했다. 학생들 손에 맡기면 방종에 휩쓸릴 거라는 교사와 부모의 생각과 달리 학생들은 더욱 엄격한 잣대를 만들었다.

 여학생들이 치마 길이를 짧게 하려고 하면 남학생들이 나서서 반대하고, 남학생이 바지 폭을 줄이려고 하면 여학생들이 견제하는 식이다. 합의를 이뤄 마련한 교칙이 ‘귀걸이 착용 허용’ 정도다. 임 교사는 “처음엔 지름 3㎜로 제한하더니, 최근에야 5㎜까지만 허용했을 정도”라며 “학생들이 스스로 더 보수적인 결정을 내릴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학교와 학생회 간의 신뢰가 생겨 학교는 학생회 자치활동을 적극 지지해주고 있다. 3학년 방창우군은 “학교 교칙을 전부 우리 손으로 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무감독 시험도 신뢰가 낳은 모습이다. 학생들은 교사의 감독 없이 시험을 치른다. 3학년 정종원군은 “교사가 감독하면 교사의 눈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에 부정행위를 할 요령을 부리게 되지만, 감독이 없으면 친구들이 내 모습을 판단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행동을 더 조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선생님이 계실 때보다 부정행위를 하는 게 더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학부모도 재능 기부 수업 등 참여 활발

학부모들의 학교 참여 활동이 증가한 점도 변화의 하나다. 매주 월요일엔 어머니들의 재능 기부 모임이, 화요일과 수요일 오후 8시부터는 아버지 독서회가 각각 열린다. 재능 기부는 서체 디자인, 꽃꽂이, 클래식 기타 연주 등 재능을 가진 어머니들이 강사로 나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업이다.

아버지 독서회는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를 목표로 아버지들이 1년치 독서 목록을 짠 뒤 학교에 모여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는 모임이다.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이나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같은 중량감 있는 책들을 읽을 정도로 수준도 높다.

 학부모들이 인터넷 카페에서 의견을 모아 학교에 건의하면 논의를 거쳐 학부모 참여 활동 여부가 결정된다. 아버지 모임에서 활동하는 이금곤(46·경기도 파주시)씨는 “학교에서 활동하다 보니 서먹하던 자녀와 대화할 거리가 많아져 관계도 좋아졌다”고 자랑했다. “내 아이가 누구랑 친하게 지내는지 어떤 선생님께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알 수 있어 아이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얘기했다.

 3학년 윤지은양은 “온 가족이 학교를 같이 다니는 기분”이라며 웃었다. “부모님이 담임 선생님뿐 아니라 교장·교감, 과목별 선생님까지 모두 친하게 지내시니, 이해의 폭이 넓어 대화가 잘 통한다”고 말했다.

 정 교장은 “전교생에게 ‘성장 플래너’를 제공해 시간관리 능력과 자기주도학습 습관을 길러주고 학생회를 통해 자치능력과 자존감 계발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글=박형수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혁신학교=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학급당 25~30명, 학년당 5학급 규모로 편성해 학생들을 위한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는 새로운 학교를 일컫는 말. 강원·경기·서울·광주 지역에서 시행 중이며 유형별로 농촌형·도시형·미래형이 있다. 교장과 교사에게 학교 운영에 대한 자율권을 제공해 교육과정의 다양화와 특성화를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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