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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석천의 시시각각

내 마음속 제노포비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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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권석천
사회부문 부장

Ⅰ. 적어도 나는 이방인에게 열린 마음을 가진 줄 알고 있었다. 그랬다. 후배가 트위터에 띄운 글을 읽기 전까지는.

스페인 남자와 결혼해 예쁜 딸 낳고 알콩달콩 살고 있는 후배의 트윗은 이런 내용이었다.

 “외국인 남편과 손잡고 길을 걸을 때, 대략 85% 이상의 사람이 첨엔 남편을 힐끗 보고 담엔 날 쳐다본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특히 중년 남성의 경우 대놓고 빤히 쳐다보는 경우가 거의 100%다.”

 나도 외국인과 걸어가는 여성들을 쳐다보곤 했는데…. 그 ‘중년 남성’은 바로 나였던 셈이다. ‘대놓고 빤히’는 아니라는 게 변명이 되진 않을 테고. 그래도 말하고 싶었다.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지 않냐고. 후배의 두 번째 트윗이 이어졌다. “사람을 훑는 무례함에 레이저빔을 쏘다가도 그런 생각이 든다. 주한미군과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양공주’가 남긴(남기는) 이미지가 이만큼 강하구나.”

 Ⅱ. 한국인들의 내밀한 차별 의식은 해외 인터넷에서 폭로되고 있다. 며칠 전 동영상 하나가 일본 네티즌들의 분노를 샀다.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에서 20대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남성은 더듬거리는 일본어로 말한다. “조만간 도쿄에 대지진이 발생해 당신들 모두 죽는 건가요? 그러길 바랍니다….”

 2주 전엔 흑인 네티즌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K-Pop or KKK-Pop?’이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한류를 대표하는 K팝을 미국의 인종차별 단체인 KKK에 비유한 것이다. 국내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류 스타들이 흑인 분장을 한 사진과 영상을 근거로 제시했다.

 나라 안에선 별문제가 되지 않았던 일들이, 별생각 없이 재미로 받아들였던 말과 행동이 나라 밖으로 흘러나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집단무의식, 아니 집단무감각 깊숙한 곳에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가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Ⅲ. 우리 사회는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다문화가정 자녀가 3만8000여 명에 달한다. 내년엔 5만 명, 내후년엔 7만 명을 넘어선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은 열악하다. 놀림거리가 되는 자녀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결혼이주 여성들의 가슴은 타 들어간다.

 “두 딸이 점점 커가며 피부색이 검게 변하자 반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딸들은 저보고 ‘엄마, 학교 오지마’라고 합니다.” “아들 반 학생들이 ‘너희 엄마 중국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중국으로 가’라고 놀릴 때면 아들은 ‘엄마는 왜 중국 사람이냐’고 울부짖습니다.”(『한국의 다문화주의』)

 갈등은 아직 집 안에, 학교 안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10년 뒤면 다문화 청소년들이 20대로 접어든다. 대학생이 될 것이고, 입사시험 면접장에 들어설 것이다. 기존의 문화와 의식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다문화 쇼크(충격)’가 엄습한다는 건 우려스러운 일이다. 미국인이 한국인을 ‘찢어진 눈’으로 비하했다고 분노하면서도 “동남아스럽게 생겼다”는 말을 스스럼 없이 내뱉는 게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Ⅳ. 10년 후, 서울광장에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모이는 날이 오지 않을까. 이들의 사회 진입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 “피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흑인이다”는, 그 옛날 미국 남부 백인들의 ‘한 방울 원칙(one drop rule)’을 들이대는 자도 나타날 것이다. 두 목소리가 부딪칠 때 한국 사회는 과연 어떤 노력을 해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교육과학기술부가 그제 다문화 학생 지원대책을 발표했지만 그것으론 부족하다. 크고 작은 차별과 무감각을 깨 나가는 정치적·사회적 프로젝트들이 펼쳐져야 한다. 필리핀 출신 귀화 여성인 이(李)자스민씨의 국회 입성을 기대하는 이유다. 정부와 각 정당도 이 문제에 대한 정책 대응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당장 표가 안 될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의 품을 넓히는 일이다. 50개국 정상이 온다는 핵안보 정상회의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