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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계층이 다르면 꿈조차 달라지는 이 암울한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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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어린 시절, 곤란한 질문 중 하나가 “너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어른들의 질문이었다. 제대로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면 “어떻게 된 녀석이 꿈도 없냐”는 놀림 겸 핀잔을 듣곤 했다. 사실 딱히 뭐가 되고 싶다거나 뭐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다. 어렴풋이나마 미래를 그려보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였다. 요즘 아이들은 확실히 조숙하다. 구체적으로 꿈을 꿀 줄 안다. 얼마 전 대구광역시에 있는 두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장래 희망을 조사했더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대구의 8학군 격인 수성구에 있는 A초등학교의 경우 절반 가까운 47%가 의사, 교수, 판사, 검사, 변호사, 외교관 같은 전문직이나 고위 공무원이 꿈이라고 대답했다. 반면에 임대 아파트가 밀집한 변두리 동네의 B초등학교에서는 교사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A학교에서는 유엔 사무총장, 로봇 공학자, 경영 컨설턴트,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를 희망한다고 적은 학생들도 있었지만 B학교에서 그런 꿈을 가진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대신 A학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제빵사, 요리사, 네일아티스트, 킥복싱 선수, 동물조련사, 사육사 등을 장래 희망으로 적은 학생들이 있었다(대구MBC, 오마이뉴스 공동조사).

 A학교 재학생 아버지의 86%가 대졸 이상인 데 비해 B학교는 67%가 고졸 이하다. A학교 아버지의 35%가 전문직 및 고위 공무원인 데 비해 B학교는 3.6%에 불과하다. 계층에 따라 아이들의 꿈도 달라지는 이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하나. 고소득과 안정성을 중시하면서도 적성과 능력을 고려하고, 오르지 못할 나무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로 우리 아이들이 영악해진 것일까. 아니면 주변에서 보고 듣고 배운 학습의 결과일 뿐인가.

 개천에서 용은 더 이상 나기 어렵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20~40대의 78.8%가 부모의 지위에 따라 자녀의 계층이 결정된다고 믿고 있다. 또 75.5%는 노력해도 그에 상응하는 보상과 인정을 받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64.4%는 한번 낙오하면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특히 40대의 71%는 패자부활의 기회가 없다고 믿고 있다.

 부(富)의 세습과 빈부 격차가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 격차가 지금처럼 벌어진 적은 없었다. 중요한 것은 패자도 승복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이다. 그리고 한번 낙오했다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패자부활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개인은 자신이 속한 계층에 관계 없이 좌절하지 말고 재도전하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고, 사회는 낙오자들을 보살피며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계층의 격차가 꿈의 격차를 낳는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꿈조차 자유롭게 꿀 수 없는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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