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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사장 전횡 때문? 총선 앞둔 정치 파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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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여의도에서 전국언론노조가 주최한 방송 3사 공동파업 집회에 참가한 노조원들. 이들은 KBS 김인규 사장, MBC 김재철 사장, YTN 배석규 사장 등에 대해 ‘낙하산 사장’ 퇴출, 노조원 징계 철회와 해직자 복직, 공정방송 복원 등을 촉구했다. [뉴시스]

1월 30일 시작된 MBC 파업이 40일을 넘기며 장기화되고 있다. KBS와 YTN도 6일과 8일 잇따라 파업에 들어갔다. 3사 모두 ‘낙하산 사장 퇴진’을 내세운다. 정부가 임명한 사장이 보도의 공정성을 심하게 훼손시켜 공영방송 혹은 준(準)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을 추락시켰다는 것이다. 반면 회사 측에선 “과거에도 낙하산 인사였는데 그땐 왜 가만히 있었느냐”며 “정치파업을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 중 MBC사태가 가장 심각하다. 회사는 기자 회장과 노조 홍보국장 등 2명을 해고했다. 노조는 김재철 사장을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회사는 다시 노조를 상대로 3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MBC 뉴스데스크는 15분으로 축소 제작돼 방영되고 있다. 새누리당 로고를 잘못 내보내는 등 크고 작은 방송 사고도 발생했다. 사측은 품질 저하를 피하기 위해 프리랜서 앵커·기자 등을 모집 중이다. 드라마·예능 PD들도 파업에 가세해 인기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 지난주 결방됐고, 간판 예능프로 ‘무한도전’은 6주째 전파를 타지 못했다. ‘무한도전’ 시청률은 파업 전에 비해 절반 수준인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MBC 노사의 주장을 점검해본다.

공정보도 훼손 vs 근거 없는 트집 잡기
▶노조=2010년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최근까지 드러난 보도 부문 불공정보도 사례만 36건이다. 기자들이 ‘또 데스크랑 부딪치겠구나’ 싶어 스스로 기사를 포기하는 ‘자기검열’이 생겼다. 이명박 대통령 사저 관련 보도의 경우 대통령 사저가 논란이라는 사실은 뺀 채 ‘대통령이 퇴임 후 내곡동이 아니라 논현동으로 가기로 했고, 경호상 문제로 아들 이름으로 했다’는 청와대 해명을 앞세워 리포트했다. 노무현 대통령 사저가 문제됐을 때와 딴판이다.
서울시장 선거 때도 박원순 후보와 나경원 후보에 대한 전체 보도량은 비슷했지만 내용은 아니었다. 박 후보의 경우 병역 논란 등 의혹을 앞세워 철저히 검증한 반면, 나 후보의 후원금 의혹은 빠지는 식이었다. 1억원 피부클리닉 논란도 ‘피부클리닉에서 실제로 쓴 돈은 550만원’이라는 경찰 발표는 방송됐다. 하지만 애초 특종을 냈던 시사주간지가 공개한 피부클리닉 원장 인터뷰 녹음테이프 기사는 못 나갔다.

▶회사=노조의 주장에 대해 일일이 해명할 필요를 못 느낀다. 언론사 데스크의 정상적인 ‘게이트 키핑(gate keeping·기사를 취사선택하고 거르는 행위)’인데 이걸 노조가 편파적인 렌즈로 본다. 이명박 대통령 사저 보도가 불공정했다는데 어이가 없다. 만일 불순한 의도를 갖고 (기사를) 막으려고 했다면 나중에 ‘사저 구입비 중 6억원을 청와대에서 내줬다’는 단독 보도는 왜 내보냈겠는가.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유세 초반 나경원 후보에 대한 검증 기사가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었다. 그 이유는 박원순 후보 쪽에서 처음에는 나 후보를 공격하는 네거티브 전략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부클리닉 녹음테이프의 경우 아무리 내용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MBC 기자가 테이프를 입수해 확인한 다음에 기사를 쓰는 게 맞다. 그런데도 노조는 ‘나 의원이 여권 핵심 인사라서 그랬다’고 한다. 데스크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건데, 대통령과 여당 관련 사안이라는 이유로 친(親)정부라고 비난하는 건 수긍할 수 없다.

불법 아니다 vs 불법 정치파업
파업 3사 중 노동법상 파업 사유에 해당하는 곳은 YTN뿐이다. 임금 문제로 협상을 벌이다 결렬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YTN 역시 노조의 핵심 요구는 임금이 아니라 해직자 복직과 사장 퇴진이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남부지청은 불법파업이라는 이유로 MBC 노조 측에 파업 철회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방송사 노조들은 언론의 특수성을 들어 불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노조=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 노동자의 특성상 편파보도 문제는 근로조건 침해에 해당한다. 편파보도 때문에 지금 시청자들이 MBC를 ‘MB씨(氏)’, KBS를 ‘김 비서’라고 조롱하는 걸 회사는 아는가. ‘낙하산 사장’이 전횡을 휘두른 결과다. 따라서 불법파업이 아니다.

▶회사=근로조건과 무관한 불법파업이므로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사장 교체 등 인사권을 행사하려는 것이다. 동시에 4·11총선을 앞두고 특정 정치세력을 배후에 둔 정치파업이다. 파업은 단체교섭 과정에서 노사 간의 이견이 발생해 협상이 결렬될 경우 근로자들이 쓰는 최후 수단이다.

PD까지 동참 vs 심리적 압박 있었다
40%가 넘는 시청률을 보이고 있는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김도훈 PD는 지난 6일 파업에 동참했다. 이로 인해 마지막 2회가 남은 ‘해를 품은 달’이 결방됐다. 김PD는 그러나 이날 밤 다시 제작에 복귀했다. 연기자와 스태프의 일정 등을 고려해서라고 한다. MBC의 또 다른 인기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의 김태호 PD와 4명의 드라마 PD가 파업에 동참했다. 보도국과 회사의 갈등을 놓고 연예·드라마 PD들이 파업에 가담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에 대한 설명도 노사가 딴판이다.
▶노조=회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은데도, 김재철 사장이 일간지에 ‘파업에도 불구하고 ‘해품달’ 시청률이 높게 나와 감사 드린다’는 광고를 냈다. 여기에 PD들이 분노해 파업에 동참했다.

▶회사=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노조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압박을 가한 것으로 안다. ‘전화 테러’라고 할 정도로 노조가 불참자들에게 전화를 많이 걸었다는 얘기가 있다. PD들도 심리적 부담 때문에 참여했다.

불공정 막는 인적 쇄신 vs 노조의 인사 개입
MBC 기자회는 올 1월 초 보도국장·보도본부장 등에 대해 불신임 투표를 실시한 뒤 교체를 요구했다. MBC 단체협약엔 노사 대표가 같은 수로 참여하는 공정방송협의회에서 보직 간부의 교체를 요구 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 회사 측은 불신임 투표를 주도한 기자 회장을 해고하는 등 초강경으로 맞섰다.

▶노조=노조가 인적 쇄신 없이는 불공정보도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는 데 문제의식을 가진 것이다. 단체협약 내용에 이의가 있다면 지난해 말 김재철 사장이 사인을 하지 않았어야 맞는 것 아니냐. 법적 지위를 부여받는 단체협약 내용을 비난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
▶회사=신입 기자들도 입사 후 석 달만 지나면 노조가 회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다. 선배들의 영향이다. 이번 파업에 대해 회사가 강경한 건 인사와 경영에 노조가 번번이 개입해온 악습을 바꿔보자는 의지 때문이다. 노조가 이번에 ‘사장이 나가든지 노조가 문을 닫든지 끝까지 가보자’고 한다는 걸 알고 있다. 회사도 더 이상 노조의 월권을 용인할 수 없다.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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