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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쟁이 천국의 뒤늦은 깨달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61호 18면

요즘 미국에서는 때아닌 성격 논쟁이 일고 있다. 내성적인 성격도 나름의 강점이 있다는 것이 요지인데, 혹자는 그게 뭐 새로운 뉴스라도 되느냐며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미국이 얼마나 외향적인 사람을 사랑하는지 알면 이야기는 달라진다.논쟁의 시작은 올해 초 수전 케인(사진)의 저서 『침묵: 끊임없이 말하는 세상 속에서 내성적인 사람들이 갖는 힘』이 발표되면서부터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곧 동일한 주제의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다뤘고, 최근 TED 콘퍼런스에서 케인이 연설을 하면서 다시금 화제가 됐다.

김수경의 시시콜콜 미국 문화 : 내성적인 사람을 위하여

뭐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다. 미국인의 3분의 1가량은 내성적인 성격을 가졌으며, 마하트마 간디나 빌 게이츠처럼 세상을 바꾼 사람의 상당수(혹은 다수)가 알고 보면 내성적이라는 것이다. 언뜻 당연해 보이는 이 주장이 일종의 ‘도발’처럼 느껴지는 것은 미국 사회가 그동안 얼마나 내성적인 사람을 홀대해 왔는지를 방증한다.
타임은 기사에서 “시끄러운 수다쟁이들의 천국인 미국에서 내성적으로 산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학교 커리큘럼은 단체활동을 위주로 짜여 있고, 외향적인 학생만이 주목받는다. 회사에서는 끝도 없는 회의가 계속되고, 무슨 말이든 하지 않으면 바보 취급을 당한다. 심지어 내성적인 사람들은 질병에도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스웨스턴대의 크리스토퍼 레인 교수는 저서 『수줍음: 어떻게 정상적인 행동이 질병이 됐는가』에서 “미국 문화는 모든 사람이 활달하고 사교적이기를 기대하며 암묵적으로 그것이 정상이라고 규정하기 때문에 내성적인 사람들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비친다”고 분석했다.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내성적인 사람이 사회부적응자(anti-social)가 아니라는 점이다. 단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재충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다. 케인은 자신이 내성적인지, 외향적인지를 진단할 수 있는 스무 개의 문항을 책 본문에 소개하고 있다. 지면관계상 다 적을 수 없지만 몇 가지만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단체보다 일대일 대화가 좋다/ 자신을 글로 표현하는 것을 선호한다/ 혼자 있는 것을 즐긴다/ 부나 명예를 덜 상관하는 편이다/ 잡담보다 의미 있는 문제를 깊게 대화하길 즐긴다/ 위험을 감수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어떤 일을 끝내기 전에 타인에게 그 일을 보여주는 것이 싫다/ 혼자 일할 때 능률이 가장 좋다/ 밖에 나가 어울렸을 때 비록 그 모임을 즐겼더라도 지친다/ 자주 전화를 받지 않고 음성메시지로 넘어가게 한다…’.

10개 이상이면 내성적인 편이라는데 나는 무려 17개나 해당됐다. 그동안 세상이 뭔가 불편했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타고난 내 천성 때문이 아니라 그 천성을 잘못이라 느끼게 했던 세상에 있다는 케인의 주장이 묘한 위로를 주었다. 케인은 내성적인 사람에게 외향적이길 강요하는 사회분위기는 내성적인 사람의 재능을 잃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오늘부터 그 잃어버린 재능이 무엇이었는지 나도 한번 찾아봐야겠다.


김수경씨는 일간지 기자로 근무하다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유학하고 있다. 대중문화 전반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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