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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워라, 원색의 숲길 10m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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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호 12면

1 ‘Winter Timber’(2009), Oil on 15 canvases, 274 x 609.6 ㎝, Private Collection, Copyright David Hockney, Photo credit: Jonathan Wilkinson

영국의 주요 화가 중 풍경화를 다룬 대표적인 화가로 서포크 지역의 풍경을 묘사한 존 콘스타블(1776~1837)과 켄트 지방 해안 바닷가의 풍경을 그린 J M W 터너(1775~1851)가 있다. 한편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는 레이크 디스트릭트 호숫가의 정경을 시로 담아냈고, 존 러스킨(1819~75) 같은 평론가도 영국의 자연과 풍경을 일반 예술이나 건축과 함께 소재로 다뤘다. 영국에서는 17~18세기부터 건축물과 함께 조경 설계에도 관심이 높아 훌륭한 조경 건축가들이 많이 배출됐다. 이렇듯 자연 풍경은 영국인들에게 친근한 소재다.

런던 ‘데이비드 호크니’전을 보고

런던 로열 아카데미 오브 아츠에서 열리고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75)의 전시회(1월 21일~4월 9일)가 화제가 되고 있는 이유도 영국의 자연 풍경에 대한 애정을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데 있다. 게다가 작가는 1967년부터 고향인 요크셔를 떠나 30년이 넘게 미국 캘리포니아를 무대로 활동해 왔다. 이번 전시는 오랜 이국 생활의 체험으로 고향의 자연을 다시 돌아보는 노작가의 고향산천에 대한 정겨운 인사다. “일상적인 자연 풍경이 기실 중요하고 아름다운 귀한 자산”이라는 작가의 외침은 지금 영국 국민들 마음속으로 퍼져가고 있는 중이다.

2‘The Arrival of Spring in Woldgate, East Yorkshire’(2011), Oil on 32 canvases (each 91.4 x 121.9 ㎝), 365.8 x 975.4 ㎝, one of a 52-part work, Courtesy of the artist, Copyright David Hockney, Photo credit: Jonathan Wilkinson

전시장을 관통하는 느낌은 작가의 자신감이었다. 화면 크기와 여러 재료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소재의 색감과 형태를 구상적인 동시에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에서 특히 그랬다. 이러한 자신감과 자유스러운 열정이 주는 대담함은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곧 작품이 주는 아름다움과 엄청난 에너지에 저항 없이 끌려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마력은 필자로 하여금 그를 주저 없이 가장 뛰어난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 꼽게 만들었다.

사실 그는 종래의 에칭, 석판화, 유화, 수채화, 스케치, 프린팅은 물론 사진기와 각종 컴퓨터 기기까지 사용하는,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작가다. 심지어 이번 전시에서는 아이패드를 이용해 스케치한 작품도 선보였다. 게다가 그는 중세기 이후 거장들의 정신을 비롯해 인상파, 큐비즘, 표현주의, 그리고 20세기 중·후반의 추상화 및 팝아트적 표현까지 미술사의 주요 흐름을 모두 소화해 냈다. 이러한 다층성은 지난 40여 년에 걸쳐 제작된 작품들에서 연대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피카소 사후 그를 영적 모델로 삼아 자신을 그의 제자로 표현한 ‘Artist and Model’(1973~74, 에칭, 57.444.3㎝)이나 큐비즘의 언어를 활용한 ‘Nichols Canyon’(1980, 213.4*152.4㎝), 그랜드캐년에 관한 사진 몽타주를 통해 풍경화가 담는 공간의 크기를 확대한 ‘Double Study for A Closer Grand Canyon’(1998, 181.6 *121.3㎝) 등이 대표적이다.

3 2007년 5월 11일 영국 북요크셔 Gordale Scar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호크니.

1997~98년도의 ‘First Yorkshire Landscape’를 담은 6개의 작품에서는 미국 서부 광활한 공간에 대한 느낌을 영국의 풍경화에서도 담아내며 완숙돼 가는 대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래서 ‘Woldgate Vista, 27 July’(2005, 61*91.4㎝)에서 영국 풍경화의 새로운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여러 시기에 걸쳐 제작된 수백 점에 이르는 작품이 전시돼 호크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그가 이렇게 작품 소재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자신감의 근원은 어디 있는 것일까. 오랫동안 작가 자신의 생활 태도와 경험에 의한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화면에 담는 대상을 정확히 관찰하고 소화하고 이해해서 ‘나의 것, 나의 이야기, 나의 이미지’로 전환하는 것이 그 구체적인 작업의 시작이라 하겠다. 반복되는 스케치를 통해 여러 각도에서 세밀하게 관찰하고 동시에 이런 요소들을 큰 화면으로 구성하는 작업인 것이다. 그는 “잘 훈련된 손(Hand), 사물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각(Eye), 그리고 이를 지치지 않고 만들어 나가는 열정(Heart)의 세 가지가 화가에게는 매우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서는 색감에 대한 남다른 의식과 이의 실험적 사용이 두드러졌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사면에 거대한 네 폭의 그림을 보게 된다. ‘Three Trees near Thixendale, Winter 2007, Spring, Summer, Autumn 2008’(each season: 183.5*489.6㎝ on 8 canvases)이다. 1년간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같은 지점에서 그린 것이다. 빛과 시간의 변화로 나타나는 형태에 대한 인식을 표현한 작품인데, 자연의 변화와 그 깊이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끔 해주고 있다. 특히 위의 4계절 중 ‘Winter 2007’에서와 같이 차가운 무채색의 겨울을 아름다운 원색으로 처리해 나뭇가지와 들판을 색다른 모습으로 표현했다.

2009년 선보인 ‘Winter Timber, 2009’(274.3*609.6㎝ on 15 canvases)에서도 사실적인 풍경에 보다 적극적으로 추상적인 색상을 가미해 전혀 다른 풍경화를 그려냈다. 자신만의 새로운 풍경화 언어를 만든 셈이다.호크니는 전시관 중 가장 큰 전시실의 크기에 맞추어 ‘The Arrival of Spring in Woldgate, East Yorkshire in 2011’(365.8*975.4㎝ on 32 canvases)을 특별 제작했다. 캔버스 32개를 사용해 폭이 10m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의 대작으로, 마치 그 풍경이 있는 장소 안에서 나무와 숲속을 노니는 듯한 친밀감을 주는 작품이다. 관람객에게 놀라움과 즐거움, 그리고 경외감을 갖도록 하는 이번 전시회의 ‘꽃’이다.

노작가의 자신감과 경이로운 열정이 보여주는 에너지는 실로 대단했다. 매표소에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긴 줄은 그 에너지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 아닐까. 이 전시는 런던 이후에는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5월 14일~9월 30일), 독일 콜로니(Cologne)의 루트비히 미술관(10월 27일~2013년 2월 4일)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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