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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중학생 학부모로 사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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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학교에 간다.’ 아버지들이 아버지회 활동을 위해 학교로 몰려들었다. 극성스러운 아버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이들도 처음엔 부담스럽고 쑥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내 아이 일인데 왜 부끄러워” “내 아이와 좀 더 가까워지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마음이 아버지들을 학교 안으로 이끌었다. 이들을 이끈 마음속 자녀는 몰라보게 성숙해진 중학생들이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부모와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은 물론 교우관계·성적·학교폭력 등 고민도 많아지는 시기다. 학교 아버지회 활동으로 이 같은 고민을 해결했다는 선배 아버지들을 만나 중학생 학부모로 사는 법에 대해 물었다.

글=김소엽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서울 목일중 2 문영양 아버지 기영석씨

성적보단 주로 친구·여행 얘기
매일 한 끼는 꼭 아이와 먹죠

기영석씨

기영석(회계사·49·서울 양천구)씨는 식사시간이면 딸 문영(서울 목일중 2)양과 생활 속 소소한 이야기부터 학교 친구들에 대한 주제로 대화를 한다. 아이와의 관계가 돈독한 편인 기씨도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고민이 많아졌다. 목일아버지회 활동을 결심한 것도 ‘중학생, 사춘기’라는 단어 앞에서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기씨는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크게 달라지는 것이 부모와의 대화 단절”이라며 “아무리 밝고 유쾌한 아이였어도 말수가 부쩍 줄어든다”고 말했다. 아버지회에서 활동한 후부터 딸과 더 많은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있다는 그는 여유 있는 날엔 가까운 바닷가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불꽃놀이를 하며 한바탕 웃고 돌아온다.

목일아버지회는 야외활동이 가능한 봄·가을에 문제학생과 모범생을 데리고 어깨동무 산행을 간다. 함께 땀을 흘리며 오르는 산행은 아이들의 생각이나 고민을 들어볼 수 있는 계기로 요즘 청소년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기씨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아이들은 ‘스스로 잘못된 일인 걸 알면서도 어른들의 시선 때문에 더욱 엇나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를 무조건 혼내고 편견을 갖는 어른들 태도가 아이에게 상처로 남는다는 걸 알게 됐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후부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꼭 아이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이를 즐겁게 하고 아이의 고민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고부터 딸의 말투나 태도도 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

기씨는 “학교폭력이나 왕따처럼 정답이 없는 일들은 정말 심각한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문단으로 구성된 졸업생 아빠들이 도움을 준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해법을 제공해 막막해 하는 새내기 아빠들의 지원군이 돼준다. 기씨는 “아빠를 거부하고 반항하는 아이에겐 꾸준히 말을 거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땐 공부 이야기는 잠시 접고 반드시 해야 할 이야기를 짧게 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좋은 말도 충고가 길어지면 잔소리로 받아들여 대화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자녀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은 한 두 마디 말만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회 활동도 학교 운영을 간섭하거나, 자녀의 학교생활을 감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자녀와의 관계개선 방법을 이웃과 나누고, 아이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다. “또래 아버지들과의 대화가 없었다면 자녀들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을 겁니다. 요즘 아이들은 어른들 세대보다 훨씬 성숙해요. 아이들이 크는 속도에 맞춰 아버지들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존중·믿음·관심 이 세 가지로 아빠의 사랑을 전해 보세요.”

서울 반포중 2 재현군 아버지 오범석씨

매년 여름 캠프서 함께 책 읽고
관심사 나누며 공부 봐줘요

오범석씨

재현(서울 반포중 2)이의 아버지 오범석(의과대학 교수·51·서울시 서초구)씨는 ‘부자유친(父子有親)’이란 이름에 반해 아버지회에 가입했다. 오씨는 “아들 교육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해진다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며 가입 이유를 밝혔다. 학교에서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특강이나 독서·진로에 대한 활동은 사춘기 아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컸다. 오씨는 “초등학생 때까진 엄마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중학생부턴 아빠의 역할이 커졌다”고 말했다. “엄마가 체력적으로 밀리면서 부쩍 커진 남자 아이들의 활동을 관리하기에 역부족이 된다”며 “학습량도 많아 엄마 혼자 관리하기도 힘들다”고 설명했다.

반포중은 7월이면 아버지와 함께 밤샘 독서를 한다. 아버지와 아이가 함께 책을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며 여름 밤을 학교에서 보내는 것이다. 오씨는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아들과의 특별한 추억이 됐다”고 회상했다. 가족여행을 가기에 여유가 부족한 아버지라면 학교 아버지회나 온·오프라인 아버지 모임에서 부족한 면을 채우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학교 공부도 관리대상이다. 오씨는 주말에 자신 있는 과목인 수학과 국어를 골라 공부를 봐준다. 부부가 각자 좋아하거나 자신 있는 과목을 맡아 공부를 봐주면 아이의 공부습관이나 학습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공부할 의지가 없는 날엔 억지로 시키지 않았다. 점수 향상에 목표를 두기보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점에 의미를 뒀다. 오씨는 “처음엔 내 욕심만 앞세워 밀어붙이니 역효과만 났다”고 말했다. “공통 관심사로 아이와 대화한다는 생각을 갖자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시간으로 바뀌었다”며 “토론학습이자 자기주도학습이 됐다”고 말했다. 오씨는 “학습에 대해 아버지마다 생각의 차이는 있다. 이 부분을 아버지와 아이가 관계를 망가뜨리지 않는 선에서 조율해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진로계발활동도 아버지의 욕심 버리기가 선행돼야 한다. 중학생 땐 구체적인 직업 선택보다 다양한 직업세계를 살피는 활동으로 유도해야 한다. 오씨는 “아이들은 부모의 직업에 관심이 많다”며 “부모가 어떤 일을 하는지부터 시작해 차츰 친인척으로 시야를 넓혀 아이의 관심사를 찾아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이어 “중학생 아이들은 독립성과 자아가 강해지는 질풍노도의 시기”라며 “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이 전달된다면 아이는 엇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아이를 믿어주고 동시에 아버지가 부모로서의 욕심을 버리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선배 아빠들이 말하는 ‘중학생 아이 이해하기’

1. 여러 선배 아빠들의 조언에 귀 기울이자

혼자 생각하다 보면 자녀와 감정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이럴 때는 주변 선배 아빠들에게 조언을 구하자. 중학생 아이들의 감정적 흐름은 어느 정도 유형과 특징이 있어 자녀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자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2. 성적 이야기는 금지어, 공통 주제 찾자

성적에 관련된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 자녀는 잔소리로 인식한다. 성적을 뺀 모든 대화를 시도해보자. 운동·연예인·여행처럼 단순하고 쉬운 주제부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공통된 주제로 술술 대화가 이어지게 된다.

3. 자녀의 생각을 존중하자

자녀들은 중학생이 되면서 눈에 띄게 자아가 강해진다. ‘아직 어리니까’라는 생각이 자녀와 부모를 멀어지게 한다. 도덕적 규율을 벗어나는 결정이 아니라면 자녀의 생각을 존중하고 지켜봐주는 것도 아버지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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