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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이런곳이? 높이 40m '절벽 동네' 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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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서울 창신동 595번지 ?돌산밑? 한가운데서 바라본 동네의 전경. 40m 바위절벽 위에도 2, 3층짜리 주택들이 보인다. 여러 장의 사진을 하나로 잇는 파노라마 기법으로 찍었다. [구가도시건축]

서울 창신동은 구수하다. 북촌처럼 세련되고 서촌처럼 정감 있지 않아도, 짙은 사람 냄새와 그윽한 시간의 향기가 얽힌 그런 동네다. 이불에 들어가 무릎을 세우면 주름이 잡히고 여러 골들이 생겨나듯, 동대문 밖 창신동은 그렇게 주름진 계곡에 자리했다. 복숭아와 앵두나무 붉은 열매가 천지에 가득하고, 바위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던 아름다운 골짜기는 이제 수많은 집들로 빼곡히 들어차고, 흐르던 물길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활기찬 시장이 됐다.

 작은 봉제공장들과 집들이 함께 있어 사람만큼이나 오토바이가 자주 다니고, 굴곡진 땅을 따라 삼거리와 사거리 같은 갈래길이 수없이 나타난다. 그냥 다니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집들로 가득 찬 이 ‘어지러운 미로’ 한가운데 신기한 세계가 있다. ‘돌산밑’ 깎아지를듯한 바위 절벽 아래 모여 사는 작은 동네란, 놀라움 그 자체다.

 오밀조밀한 집들 뒤로 높이 40m, 폭 200m 화강암 절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꼭대기에는 2, 3층 높이의 집들이 높은 절벽 위에 축대를 쌓고 아슬아슬 올라서 있다. 한 번 보면 잊지 못할 장관이다.

절벽 아래 집들은 저마다 옥상을 머리에 이고 햇볕을 보기 위해 자란 듯한 모양이다. 밖으로 붙은 계단들이 넝쿨처럼 건물을 감아 돌고, 골목과 집, 옥상을 위 아래로 자유롭게 잇고 있다. 옥상은 저마다 크기와 높이가 다르고 가까이 붙어 있어, 언뜻 보면 돌산 아래 다랭이논이 펼쳐진 것 같은 느낌이다. 재주만 있다면 이 옥상에서 저 옥상으로 넘어 다니는 것도 어렵지 않을 성 싶다.

 “1965년쯤인가 깜깜한 밤에 사람들이 나타나서 집을 짓는다고 여기 비어있던 채석장 땅에다 줄을 긋고 난리도 아니었어. 얼마 후 천막집들이 들어섰지.” 마을 한가운데에서 만난 아주머니 말씀이다. 공동수도가 있던 이 자리엔 지금은 이발소만 남아 있다. 70년대 들어 소유주인 금강채석토건 주식회사로부터 땅을 사들인 주민들은 벽돌을 쌓고 슬라브를 쳐서 지금의 집들을 지었다. 공사비를 뽑으려면 세를 놓아야 하니 2, 3층으로 집을 늘려 지었다. 대지가 작아 좁고 높은 모양의 집들이 설계라는 것도 없이, 집주인 생각과 동네 ‘김 목수’의 재량, ‘배 미장’의 솜씨로 그대로 지어졌다. 말하자면 ‘건축가 없는 건축’이 실현된 셈이다.

 그럼 왜 이곳에 채석장이 생겼을까. 그 연원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0년에서 20년대 후반까지 일제는 식민도시 경성의 기반을 다지는 주요 건물을 차례로 짓기 시작한다. 대부분 서양식 석조 건축물로 1912년 조선은행(한국은행), 1925년 경성역(옛 서울역), 1926년 경성부청(서울시청), 그리고 가장 상징적인 건물인 조선총독부가 1926년에 10년간의 공사를 거쳐 완공된다.

동대문 바로 밖이라는 최적의 입지를 가진 창신동 돌산은 경성부 직영 채석장으로 탈바꿈해 매일 발파와 석재 채취가 일어나는 아수라장이 된다. 그리고 거기서 떠진 돌들은 조선총독부 건물의 한 부분을 이루기 위해 경복궁 경내로 운송됐다. 해방 후에도 얼마간 채석장으로 쓰이다 60년대 이후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된다. 이 아슬아슬한 곳에선 절벽에서 암석이 굴러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등의 사고도 있었다.

 돌산밑을 찾아가려면 먼저 동대문역 3번 출구에서 창신시장 입구로 들어서야 한다. 시장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되지만,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매력적인 것들이 너무 많아 도중에 새기 일쑤다. 예를 들면 초입에는 유명한 네팔 카레요리점 ‘에베레스트’와 80년 전통의 한증막 ‘동호한증원’이 있고, 중간엔 ‘매운족발’ 집들이 매콤한 냄새로 식욕을 자극한다.

 끝엔 구수한 냄새의 순대국집들이 있다. 시장이 끝나고 가던 방향으로 계속 올라가면, 모든 건물들과 길들이 한군데로 몰린 듯한 ‘육거리’가 나온다. 6개 중 어느 하나 같은 길이 없다. 바로 이 육거리에서 세 시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그 끝에 돌산 밑이 있다.

 여기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70년대 초, 돌산 밑을 제외한 그 위쪽 언저리에 길을 닦고 땅을 나누어 분양한 집들로, 지도로 보면 정연하게 들어선 주택가로 보이지만, 사실은 낙타 등같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땅에 축대를 높이 쌓아 만든 집들이다. 400m 넘게 들어선 축대와 집들을 보는 것도 무척이나 색다르다.

이 풍경이 너무도 강렬해 우리 답사일행은 이곳을 ‘축대마을’이라 부른다. 실측하던 봄날, 흰 벚꽃 날리는 골목에서 우리 일행에게 소주 한 잔에 빨간 생간을 권하던 동네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조정구(46)=건축가. 2000년 구가도시건축 설립. ‘우리 삶과 가까운 일상의 건축’을 화두로 도시답사와 설계작업을 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서울 가회동 ‘선음재’, 경주 한옥호텔 ‘라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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