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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세 CEO "건강에 나쁜 친구는 술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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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해도 어쩔 수 없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 맞다. 김덕인 요넥스코리아 회장을 보면 그렇다. 올해 나이 아흔둘. 한데 경영일선에서 직접 뛰고 있다. 매일 아침 출근해 실무와 관련한 결재를 직접 한다. 이뿐이 아니다. 그는 쉰일곱, 남들이 은퇴할 나이에 동승통상이라는 스포츠용품 업체를 차렸다. 그리고 국내 최초로 배드민턴 셔틀콕을 만들었다. 이를 시작으로 일본 요넥스의 한국 총대리점으로 요넥스코리아가 됐다. 작지만 알찬 회사다. 이제는 배드민턴뿐 아니라 다른 스포츠용품의 생산·수입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야말로 사업과 건강 모두 ‘장수 만세’다.

글=이도은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인터뷰할 때면 자주 건네는 인사가 있다. ‘젊어 보이세요’ 내지는 ‘동안이시네요’다. 상대를 기분 좋게 하는 데 특효가 있는 말이다. 그런데 김 회장은 정말 젊어 보였다. 청년처럼 흔들림 없는 목소리, 검버섯이 별로 보이지 않는 피부 덕분이었다. 당연히 궁금한 것부터 물어야 했다. 건강 관리의 비결 말이다.

●10년은 젊어 보이신다.

 “그런가. 정신이 건강해서 그런가 보다. 아직도 내 나이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남다른 비결이 있을 것 같다.

 “규칙적으로 사는 게 중요하다. 매일 출근한다. 오전 9시에 나와 신문도 보고 결재도 하면서 머리를 쓰는 거다. 그리고 점심 먹고 격일로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을 한다. 운동하고 사우나 하는 데 2~3시간씩 쓴다. 운동 안 하는 날은 목욕만 하는데 1주일에 한두 번은 스포츠마사지나 경락을 받기도 한다. 참, 음식에 욕심 내지 않으려 한다. 적게 먹고 텔레비전도 정해진 시간 동안만 보려고 한다.”

●특별해 보이진 않는다.

 “그렇지 않다. 규칙적으로 하느냐는 정말 어렵다. 요즘처럼 추운 날 나라고 매일 가고 싶겠나. 그래도 원칙이니 하는 거다. 노력이 없으면 건강도 못 지킨다. 집에 안마기만 5대가 있다. 남들 소파에 앉을 때도 건강을 생각해서 꼭 안마기에 앉으려고 한다. 사무실에 자전거를 놓은 것도 느슨해지지 않으려는 거다.”

●사우나·마사지를 특별히 즐기나 보다.

 “지병은 없는데 혈액순환에 가장 신경을 쓴다. 아, 이건 말해도 되나 싶은데 우연히 일본에 갔다가 알게 된 영양제가 있다. 게르마늄 성분이 들어간 비레모(BIREMO)라는 것인데 굉장히 나랑 잘 맞아서 40년째 먹고 있다. 이제는 직원들이 일본 출장 가면 알아서 사올 정도다. 물론 아들딸, 며느리들한테도 권하고 있다.”

그는 건강관리에도 특별한 시점이 있다고 했다. 살아보니 70, 80, 85, 90이 될 때 계단식으로 노화가 급격히 진행됐다는 것. 그래서 20여 년 전부터 즐기던 담배를 끊었고, 85세가 된 이후로는 건강검진을 더 자주 한다. 석 달에 한 번씩 무조건 병원에 가서 체크를 받고, 일 년에 한 번씩 종합검진도 한다. 그러면서 또 하나 덧붙이길 나이가 들어서는 ‘건강에 도움되는 친구’를 사귀라고 했다. 술 많이 먹는 친구도 기피 대상이지만, 뭔가 만나서 이것저것을 생각해야 하거나 편하지 않은 사람과는 관계를 맺지 말라는 얘기였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인데 경영을 하다 보면 피할 수 없지 않나.

 “마음 편하게 경영하면 되지 않나. (사무실에 걸린 족자를 떼오더니) 내가 늘 신조로 삼는 게 여기 쓰여 있다. ‘정직-노력-봉사’다. 떳떳하게 사업하면 마음 졸이고 신경 쓰고 그럴 게 없다. 내가 가장 자랑하는 게 성실한 납세다. 2008년에도 우리 회사는 기획재정부 장관상을 받았고, 지금도 마포구 모범납세법인으로 지정돼 있다.”

●어쨌든 남들은 경영에서 물러날 나이다.

 “중소기업이 40년 가까이 버텨온 게 쉽겠나. 나는 내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영 2세들은 윗세대보다 많이 배우고 똑똑하지만 온실 속 화초일 때가 많다. 경륜 없이 사업을 키우려다 보면 나쁜 유혹을 덥석 물기 십상이다. 빚을 내서 덩치를 불리기도 하고. 그러다 삐끗하면 대기업에서 돈 대주겠다는 제안에 넘어간다. 하지만 난 다르다. 안전주의에 보수성이 강하다. 100만원짜리 사업을 하려면 300만원 갖고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또한 경험에서 나온 철학이다.”

●무슨 얘긴가.

 “88년에 믿을 만한 전문경영인을 영입했다가 시련을 겪었다. 외형적으로 회사는 커졌는데 미수채권이 쌓이고 은행 부채도 많아졌다. 그대로 뒀다가는 회사가 망할 정도였다. 그때 사업을 도왔던 아들도 잠시 내보내고 혼자 회사 살리기에 나섰다. 일단 적자에 빠진 의류사업을 정리하고 다시 배드민턴 용품 사업으로 집중화시켰다. 갖고 있던 골프회원권·주식도 다 팔았다. 남들은 외환위기 때 시행한 구조조정을 미리 한 셈이다. 지금 생각하면 전화위복이었지만 그때는 아찔했다. 99년이 돼서야 부채가 0이 됐다.”

●그런데 아들은 왜 내보냈나.

 “혼자 세상에 부닥쳐보라는 의도였다. 아들(김철웅 사장)은 나와 처음부터 사업을 해왔다. 그래서 자기 사업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한번쯤 느껴봐야 하지 않나 싶었다. 무역업을 차렸다가 2년4개월 만에 돌아왔다. 괜찮은 경영수업이었던 것 같다. 지금 대학 졸업반인 손자도 취업 전선에 나섰다. 우리 회사로 바로 올 수도 있지만 남들과 똑같은 인생 경험을 먼저 하라고 했다.”

김 회장이 회사를 세운 건 77년 쉰일곱 때였다. 그 전에도 사업을 해왔다. 소규모 수산물 수출 회사를 차려 웬만큼 먹고사는 자영업자였다. 그런데 남들이 은퇴할 나이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그 나이에 뭔가 시작한다는 게 두렵지 않았나.

 “내 인생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너무 어릴 때부터 맨땅에 헤딩 식으로 살다 보니 그런 건 없었다. 난 함경도 고흥 출신인데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자식 없는 큰집으로 양자를 갔다. 그런데 큰어머니가 아이를 갖게 되면서 입장이 곤란해졌다. 소학교 졸업하자마자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그러다 46년 월남해서 외삼촌이 있는 목포로 갔고, 거기서 결혼하고 김정중이라는 평생 친구도 만났다. 그 친구가 사업자금을 빌려줘서 맨바닥에서 처음 사업을 시작했다. 솔직히 예순 다 돼서 새로 회사를 차린 건 자식들을 생각해서였다. 내 인생과 달리 편안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왜 배드민턴이었나.

 “70년대 초반 남산 아래 후암동에 살았다. 새벽에 산에 올랐다가 사람들이 배드민턴을 치는 것을 보고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운동을 시작했다. 그중 몇몇 사람과는 아예 실내체육관 동호회를 결성했는데, 당시 국가대표였던 김봉섭씨가 가끔 와서 레슨을 했다. 한번은 김씨가 내게 제대로 된 셔틀콕을 한 번 만들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하더라. 당시 국내에는 닭털로 만든 셔틀콕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국제대회 공인 제품은 거위털로 만든 셔틀콕이라 우리나라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나가면 좋은 성적을 내기 힘들었다. 그래서 회사를 차리고 ‘스완(백조)’이라는 이름으로 셔틀콕을 만들기 시작했다. 국내 배드민턴계의 일대변화였다.”

일본 요넥스 미노루 회장 부부와 함께 포즈를 취한 김 회장. 30년 이상 사업 파트너 이상의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 요넥스와는 어떻게 연결됐나.

 “코프스라는 덴마크 배드민턴 선수가 있었다. 사업하며 알게 됐는데 동생을 데리고 한국에 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만난 날 동생이 생일이라고 하니 집으로 데려와 파티를 열어줬다. 그는 너무 감동하면서 즉석 제안을 했다. 이틀 뒤 일본 고베에서 열리는 일본 오픈에 같이 가자는 것이다. 그러고는 현지에서 미노루 요네야마 요넥스 회장을 소개해 주었다. 잠깐 만났는데 다음날 회장이 연락을 해왔다. 한국 독점 판매를 맡아줄 수 있겠느냐는 얘기였다.”

김 회장은 미노루 회장과의 관계를 ‘신뢰’로 표현했다. 외환위기 당시를 한 예로 들었다. 환율 상승으로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자 요넥스코리아와 판매상, 일본 본사 등이 각각 손실을 분담하며 가격 인상을 최소화했다. 어려울 때였지만 시장점유율은 더 높아졌다. 김 회장은 “지금까지 30여 년간 본사와 약속한 매출 목표를 한 번도 지키지 못한 적이 없다”며 “사업에선 믿음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둘의 관계는 35년째 이어지고 있고, 현재 매출은 320억원(2011년 기준) 규모로 커졌다.

●올해는 올림픽 특수를 노려볼 만하다.

 “맞다. 올림픽 때마다 대부분 매출이 상승했다. 우리나라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면 제품들이 인기를 끈다. 물론 우리 경기가 골든타임에 있을 때다. 지난번 베이징 올림픽 때는 그랬는데 기대가 된다.”

●현재 배드민턴 시장은 어떤가.

 “눈에 띌 만한 성장세가 보이는 건 아니고 꾸준하다. 배드민턴 인구를 300만 명으로 보지만 그건 일 년에 한 번 라켓 잡는 사람까지 포함한 거고, 실제로 클럽(동호회)에 가입한 인구는 30만 명 수준이다.”

●다른 돌파구가 있어야 할 텐데.

 “3년 전부터 불어 닥친 아웃도어 시장이 부럽다. 등산 시장이 국민체육으로 자리 잡았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지금 이것을 시작하면 너무 늦었고. 대신 뭐가 유망할까 생각하다가 걷기를 주력 사업으로 택했다. 배드민턴처럼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라서다. 3년 전부터 워킹 슈즈를 자체 생산하고, 멀티숍 워킹온더클라우드를 여는 등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려 한다.”

●배드민턴-골프-걷기까지, 스포츠산업의 매력이 뭔가.

 “내가 왜 스포츠를 좋아하는지 아나. 룰이 있어서다. 원칙이 있으니 그것을 따라 노력만 하면 되는 거다. 난 사업도 그렇게 하고 싶다.”

j 칵테일 >> 원천배 배드민턴 대회, 유일했던 5학년 MVP 이용대

이용대 선수

요넥스코리아는 각종 배드민턴 대회를 주최·후원한다. ‘요넥스 코리아오픈 대회’ ‘장애인 배드민턴 대회’ 등 크고 작은 규모의 대회가 50여 개에 이른다. 하지만 이 중에서 김덕인 회장이 가장 자랑하는 대회는 ‘원천배 초등학교 배드민턴 선수권 대회’다. 잠재력 있는 어린 선수들을 조기에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이 목표. 전국 각 시·도 선수들 외에 현재는 대만·싱가포르·일본에서도 참가한다. 1994년 처음으로 열린 이래 국내 배드민턴 대표 선수들은 모두 이 대회를 거쳐 갔다. ‘원천(原川)’은 김 회장의 아호이기도 하다.

 원천배 대회의 가장 큰 특징은 출전선수 전원이 일정 내내 숙식을 함께한다는 것. 이에 대해 김 회장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다른 대회를 보면 출전해 지면 그날로 바로 집으로 간다. 스포츠가 즐거움이기 이전에 경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초등학생에게 스포츠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 돼야지 승리 자체가 그 목적이 돼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서로가 배드민턴을 같이하는 동반자라는 인식을 심어 주기 위해 팀을 섞어 한방을 쓰게 하거나 저녁에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갖는 프로그램을 짰다. 그에게 대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물었더니 이용대 선수를 언급했다. “이 선수는 99년과 2000년 연속 최우수선수에 뽑혔다”며 “MVP는 보통 6학년이 받는 상인데 지금까지 유일하게 5학년이 받았던 경우라 대단하게 여겼다”고 했다. 역시 떡잎부터 달랐던 금메달리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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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일관성이다. 가령 난 사람들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올 때 무릎에 놓았던 냅킨을 어떻게 하고 나오느냐, 젓가락 숟가락은 어디 두느냐도 주의 깊게 본다. 그게 그 사람의 진면목이다. 누구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깨끗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있을 수 있지만 그런 시선이 없을 때 스스로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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