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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 죽었나 살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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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전·현직 교장으로 구성된 ‘공교육 살리기 교장연합’ 회원들이 21일 서울 신문로2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곽노현 교육감의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학생 생활지도 방향이 여전히 헷갈립니다.”

 28일 오전 서울 용산의 한 일반고 교장실. 이 학교 교장과 교감은 전날 개정된 초중등교육법을 놓고 새 학기 학생지도 방안을 논의하다 상반된 의견을 내놓았다. A교감은 “전에는 교육감이 학칙을 인가해주도록 돼 있었는데 국회에서 이를 폐지하는 법안이 통과됐다”며 “학칙을 제정하면서 학생인권조례를 꼭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B교장은 “그동안 학생인권조례로 생활지도가 힘들었는데 새 학기부터 학칙에 간접체벌이나 복장·두발 문제 등을 담을 수 있는지 정부와 교육청 해석이 다른 것 같다”며 신중한 검토를 지시했다.

 새 학기를 코앞에 두고 초·중·고교가 혼란에 빠졌다. 교육감의 학칙 인가권 폐지로 일부 학교는 간접체벌 허용, 복장·두발 검사 실시 등 학생인권조례에 반하는 학칙을 검토하고 나섰지만 대다수 학교는 교육과학기술부와 교육청의 입장이 달라 혼선을 빚고 있다. 교과부가 학교 자율로 학칙을 제정할 수 있게 해놨지만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는 서울·경기 등 지역에서는 조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교과부 오승걸 학교문화과장은 28일 “학교가 교육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율적으로 학칙을 정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라며 “간접체벌처럼 학생인권조례와 내용이 어긋난다 해도 학교 자율로 학칙을 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친(親)전교조 교육감들은 학칙 인가권 폐지와 학생인권조례는 무관하다며 교과부와 정면 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교육기본법에는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면 안 된다고 규정돼 있어 개정안으로 인권조례가 무력화된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교육감 곽노현) 조신 공보관은 “학칙 제·개정의 자율성이란 것도 조례의 범위 안에서 자율이기 때문에 학생인권조례의 영향력은 그대로다”라고 주장했다. 경기도교육청(교육감 김상곤) 이홍동 대변인은 “교육감은 초·중등교육법에 명시된 장학지도권에 따라 개별 학교가 학생인권조례에 맞게 학칙을 제정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이를 어길 시 변경 명령을 내릴 수 있다”며 “실제 사용하지 않는 사문화된 학칙 인가권이 폐지됐다고 학생인권조례가 무력화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윤석만·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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