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생은 연극, 가면을 써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59호 31면

1~3 가면 차림으로 베네치아 카니발을 즐기는 사람들. 4 베네치아 카니발의 수상 퍼레이드. 5 베네치아 카니발에서 빈센트 반 고흐처럼 분장한 사람.

매년 2월 열리는 카니발은 원래 공현절(1월 6일)부터 재의 수요일 전날까지의 성스러운 기간을 의미하지만, 현재는 신나게 먹고 마시는 축제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비아레조, 그리고 프랑스 니스의 카니발 현장을 다녀왔다.

이탈리아,프랑스의 카니발 2012

와인 분수 샘솟는 베네치아 카니발
다른 도시들처럼 성대한 마차 퍼레이드는 없지만 베네치아 카니발을 찾는 모든 이는 축제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마스크와 적당한 복장만 갖춘다면 말이다. 사방팔방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마스크와 즉석 분장을 통해 스스로 주인공이자 구경꾼이 된다. 지난 11일부터 21일까지 열린 베네치아 카니발의 테마는 ‘인생은 연극이다. 모두 마스크를 써라’다. 11일 오후 산 마르코 광장에서는 최고의 마스크를 뽑는 콘테스트가 진행 중이었다.

6 비아레조 카니발에 등장한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 거대 인형. 7 비아레조 카니발에 등장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거대 인형. 8 비아레조 카니발에 등장한 일본식 악마 인형.9 니스 카니발의 꽃마차 퍼레이드에서 여성들이 꽃을 던지고 있다. 10 니스 카니발에 참가해 삼바를 추는 댄서.

가면과 화려한 의상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 오페라 무대의 주연들처럼 연극을 했다. 의상과 마스크에 사용되는 장식과 색상은 지난해보다 더 화려해지고 풍성해 보였다. 불사조의 머리와 비늘을 색종이로 하나씩 만들어 입은 사람, 나비와 꽃으로 치렁치렁 장식한 사람, 온몸을 금색 그물로 둘러싼 사람, 유럽의 고딕 양식 성을 옷으로 만든 사람 등 저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가장 눈에 띈 사람은 ‘반 고흐’다. 그는 온몸에 주렁주렁 자신(즉 반 고흐)의 그림을 걸었고 네덜란드인들의 나막신을 신었다. 짚으로 짠 의자를 등에 메고 그 위에 해바라기를 올렸다. ‘반 고흐’는 가는 곳마다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았지만 고흐가 살아서 최고의 화가로 선정되지 못했듯 그 역시 베스트 마스크로 뽑히진 못했다.

산 마르코 성당을 지나 바닷가로 가는 길 왼편을 보니 임시 가판대 뒤 분수에서 피 같은 빨간 물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빈 부를레(Vin Burl , 뜨거운 와인이란 뜻으로 레드 와인에 설탕과 향료 등을 넣어 따뜻하게 데워 마시는 음료)다. 가판대에서 일하던 바텐더가 주전자를 들고 분수로 가더니 그 빨간 물을 담아 손님에게 건넸다. 카니발 기간 내내 분수는 빨간 물을 뿜어댔고, 한동안 불사의 명주로 불리던 이 뜨겁고 빨간 물을 마시기 위해 사람들은 낮에도 밤에도 긴 줄을 서야만 했다. 베네치아에서는 불꽃놀이(전쟁을 상징), 무어인의 춤(전투를 상징), 황소 목 자르기(심판을 상징), 탑 꼭대기에서 광장까지 내려오는 천사의 비행(평화를 상징), 그리고 베네치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12명의 여성을 뽑아 행진하는 마리아의 축제 등을 통해 축제의 열기를 이어갔다.

11 니스 카니발에서 화려한 원색 날개를 펄럭이며 퍼레이드 중인 단원.

정치인 풍자하는 비아레조 카니발
이탈리아 사람에게 “이탈리아에서 제일 중요한 카니발은 뭔가요”라고 물으면 십중팔구 비아레조 카니발이라고 답한다. 흔히 세계 3대 카니발로 이탈리아 베네치아, 프랑스 니스,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를 꼽는데 정작 이탈리아 사람들은 비아레조라고 한다. 현장에 가보면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해변에 위치한 비아레조의 카니발은 도시 규모가 작고 교통이 불편해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 규모나 화려함은 어느 카니발과 비교해도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주민들이 6개월 이상 폐지를 이용해 손으로 만든 거대한 인형들 앞에서는 경외감마저 느껴진다.

비아레조 카니발은 1873년 높은 세금에 반대하는 부유층들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1925년부터 현재와 같이 종이로 만든 인형들과 마차들이 등장했다. 올해의 테마는 ‘세상의 종말’. 종이로 만든 거대 인형의 주인공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세계의 정치인들이다. 지난해 총리 자리에서 물러난 베를루스코니는 여전히 조롱과 비판의 대상이다. 귀족들이 쓰던 가발 안에서 대머리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베를루스코니는 체스 말들로 표현한 정치인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 그 뒤를 나폴레옹 차림의 사르코지가 백마를 타고 등장했다. 좌우에는 이탈리아 새 총리 마리오 몬티와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사디스트 복장을 하고 있다. 그 앞에는 사르코지의 부인 카를라 브루니가 베를루스코니 얼굴을 한 아기를 안고 있었다.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를 세상의 종말로 보고 우아하고 공포스럽게 표현한 것은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배경으로 등장한 거대 인형 앞에서 흰 자루와 폴리에스테르 천으로 만든 기모노를 입고 절제된 춤 동작을 연출하는 수많은 사람은 마치 파도의 거품처럼 보였다. 마차 꼭대기에는 시커먼 지옥의 괴물이 포효했고, 해일을 나타낸 거대한 파란 바퀴가 밑에서 무시무시하게 굴렀다. 그 외에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낸 공룡이나 지옥의 미친 개, 공작새의 꼬리처럼 꼬리가 열렸다 닫혔다 하는 피닉스 인형도 눈길을 끌었다.

꽃 10t의 향연, 니스 카니발
니스(Nice)는 프랑스 남동부 지중해 연안의 대표적인 휴양도시로 이탈리아 통일 영웅인 주세페 가리발디의 고향이며 파가니니와 앙리 마티스가 생을 마감한 곳이다. 원래 이탈리아에 속해 있었지만 1860년 국민투표를 통해 프랑스로 합병됐다. 건축물이나 음식 등 생활방식에 이탈리아 문화가 많이 배어 있는 이유다.
휴양도시 니스를 더 유명하게 하는 것이 카니발 축제다.

1873년 제 1회가 시작된 니스 카니발은 세계대전, 걸프전 등 세계 정세가 어려울 때 몇 번 중단도 했지만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올해는 17일 시작돼 3월 4일까지 열린다. 올해의 주제는 ‘스포츠의 왕’. 2012년 런던 올림픽을 대상으로 했고, 특별 게스트로 영국 황실을 선택했다. 꽃마차 퍼레이드가 열리는 프롬나드 데 장글레(Promende des Anglais) 길로 향했다. 해변을 따라 수십 km에 달하는 이 길은 19세기 영국 사람들이 길 만드는 비용을 댔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수천·수만 송이의 꽃으로 장식한 꽃마차가 관중 앞을 지나갔다. 마차에 타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들은 관객들에게 꽃을 던졌다.

니스를 상징하는 노란색 미모사부터 장미, 카네이션, 백합, 달리아, 수선화, 칼라 등 값비싸고 화려한 꽃까지 무려 10t에 달하는 꽃들이 뿌려진다. 사람들은 바리케이드 바깥쪽에서 손을 흔들며 “내게! 내게! 꽃을 던져줘요!”라고 외쳤다. 미녀들이 꽃을 던질 때 관광객들은 색종이 조각을 뿌린다. 퍼레이드 차 중에는 기계로 긴 종이 리본을 쏘는 차도 있었다. 가끔 대포로 종이뭉치를 하늘 높이 쏘아 색종이가루가 흩뿌려지면 사람들은 미친 듯 환호했다. 2시간 정도의 퍼레이드가 끝날 즈음이면 마차는 뼈대만 남고 들뜬 분위기도 서서히 식는다. 사람들은 밤에 열릴 빛의 축제를 앞두고 충전의 시간을 갖기 위해 숙소로 돌아간다.

밤 9시, 수만 명의 인파가 운집한 마세나 광장은 열기로 가득하다. 오프닝 멘트와 함께 만국기로 덮인 대형 마차가 지나갔다. 뒤를 이어 테니스 스타 조코비치를 닮은 거대한 인형이 한 손에는 권투 글러브를, 다른 한 손에는 테니스 라켓을 들고 스포츠 카 위에 앉아 등장했다. 이어 런던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과 리듬체조를 하는 거대 인형, 프랑스 축구스타 지단과 교황 베네딕트 16세, 오바마 대통령, 달라이 라마가 탄 빛마차가 등장했다. 요란한 음악과 사람들의 환호 속에 카니발은 점점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