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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의 ‘여자란 왜’] 남자의 사랑이 식었을 때 …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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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임경선 칼럼니스트·『어떤 날 그녀들이』 저자

같은 선상에서 같은 감정의 부풀기로 사랑을 시작한 남녀가 있다면 대개 남자가 먼저 식는다. 하필 슬프게도 여자는 그 반대다. 어찌 된 게 감정적으로 더 푹 빠지고 때로는 집착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남자에겐 집착으로 보이는 그 행동이 여자에게 운명적인 사랑임을 증명하고 지속시키기 위한 간절한 일편단심의 의사표현이라는 것이다.

 남자들이라고 완벽한 사랑에 대한 동경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만큼 자신의 감정에는 완벽한 확신이 안 생기는 것뿐이다. 어떻게 보면 솔직하다. 그리고 그들은 여자가 그리는 완벽한 연애를 구현하기 위해선 가상한 노력이 필요하고 그 ‘여자를 사랑하는 일’이 상상 이상으로 피곤한 일임을 알고 좌절한다. 회사 일보다 더 힘들고 피곤한데 돌아오는 건 고작 여자의 원망과 짜증이라니!

 “어떻게 인간적으로 나한테 그럴 수가 있죠?” “괴로워서 죽어버릴 것만 같아요.” 밸런타인 데이가 얼마 지나지도 않아 급속 냉각한 남자들을 붙들고 꿈에서 깨어나길 거부하는 여자들이 보인다.

 그런데 어쩐다. 지난 이십여 년에 걸친 남자를 향한 애증의 세월을 걸고 말하자면, 영원한 사랑에 대한 바람이 남자에게 사랑의 일상화로 번역되는 순간부터 남자의 욕망과 열정은 급속히 저하되는 걸.

 남자 탓만 하자는 게 아니다. 여자들이 상상도 못하는 사사로운 지점에서 남자들이 무척 예민하다는 사실을 의외로 많은 여자들이 간과한다. 또한 여자들은 자신들이 상처받는 것엔 꽤 민감한 것에 반해 자신들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지점에선 둔감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남자가 식으면, 여자들은 일단 자신의 ‘남자에 대한 안목 부족’이나 ‘운명적으로 꼬인 만남’을 탓하며 나부터 보호하고 넘어가려 한다. 하긴 그게 여자의 생존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임경선 칼럼니스트·『어떤 날 그녀들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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