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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빚 900조 시대 18개월 새 100조↑ 악성 부채 더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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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회사원 이모(45)씨는 지난해 11월 전세금을 올려주느라 5000만원의 대출을 새로 받았다. 적립식 펀드를 깨고 통장에 있던 여윳돈을 끌어모았지만 집주인이 추가로 요구한 9000만원을 마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존 대출을 합친 이씨의 빚은 1억5000만원으로 크게 불어났다. 날짜를 맞추려 신용대출로 받다 보니 연 5%대였던 평균 금리 부담도 6% 이상으로 뛰어올랐다. 이씨는 “월급은 그대론데 이자 부담만 월 10만원 이상 늘어나 살림이 더 빡빡해졌다”고 하소연했다.

 가계 빚이 대한민국을 짓누르고 있다. 사상 처음 900조원을 넘어섰다. 양은 늘고 질은 나빠졌다. 대출이 어려워진 서민들이 제2금융권으로 몰리면서 악성 부채도 늘고 있다.

 2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가계빚은 모두 912조9000억원에 달했다. 4분기에만 22조3000억원 늘어났다. 2010년 4분기 이후 1년 만에 가장 큰 증가 폭이다. 2010년 2분기 800조원을 돌파한 지 1년 반 만에 100조원 넘게 증가했다. 한은 관계자는 “지난해 정부가 강력한 억제책을 내놓으면서 둔화하던 증가 폭이 가을 이사철과 연말 자금 수요 등으로 다시 커졌다”고 설명했다.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빠른 증가 속도가 문제다.

 ‘풍선효과’도 두드러진다. 은행 문턱이 높아지면서 금리가 높은 신용협동조합과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대출이 급증했다. 지난해 4분기 은행권 가계대출은 전분기보다 6조2000억원 증가했지만 제2금융권 대출은 7조9000억원 늘어났다.

 가계의 빚 갚을 능력은 되레 뒷걸음질치고 있다. 가계의 빚 상환 능력을 나타내는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2010년 103.4%에서 지난해 109.6%로 1년 새 6.2%포인트 상승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요즘 대출상담을 받는 고객의 20%가량이 은행 대출을 못 받아 찾아온 고객들”이라며 “가계의 사정이 더 다급해지고, 상환능력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가계 빚이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금융팀장은 “빚에 치인 가계가 소비를 줄이면 내수 침체로 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지는 악순환이 우려된다”며 “빚을 감당하지 못한 ‘하우스푸어’들이 집을 내놓기 시작하면 더 큰 실물충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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