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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로 갈려 싸움질만 하는 정치 … 여야의원 사랑에 빠지면 어떨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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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국정치 풍자소설 『내 연애의 모든 것』을 낸 이응준 작가가 꽃이 활짝 핀 스파티필룸 화분을 들고 있다. 스파티필룸은 공기정화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씨에게 혼탁한 정치를 정화하는 키워드는 극단의 상대도 끌어안는 사랑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새한국당 김수영(39) 의원과 진보노동당 오소영(38) 대표가 연인 사이로 밝혀졌다. 두 사람은 최근 국회 폭력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로 주목을 끌었었다. 정적(政敵)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배경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새한국당의 한 수도권 의원은 “신성한 국회에서, 그것도 과격한 야당 대표와 연애를 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라고 했다. 진보노동당 관계자도 “오 대표가 지지자들에게 심각한 상처를 입혔다”고 말했다.

 이런 기사를 신문에서 볼 수 있을까. 여당 의원과 야당 의원이 사랑에 빠지다니. 반 토막으로 갈라져 싸움질만 하는 대한민국 국회에서 말이다. 이응준(42)의 장편소설 『내 연애의 모든 것』(민음사)은 그런 발칙한 상상력에 기댄 작품이다. 겉으로는 여야 의원이 사랑에 빠지는 연애소설이며, 속으로는 정치권 비판이 꿈틀대는 정치풍자 소설이다.

 남자는 보수 여당인 새한국당 초선 의원 김수영. 판사 생활 3년 만에 국회에 진출한 엘리트다. 여자는 소수 야당인 진보노동당 오소영 대표. 최연소 야당 대표이자 빼어난 외모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두 사람은 날치기 법안 통과 과정에서 폭력 사건에 휩싸인다. 오소영이 던진 소화기에 김수영이 맞은 것.

 김수영은 사과를 요구하고, 갈등이 격화된다. 하지만 국회 안에서는 삿대질을 하다가도 국회 밖에선 협잡을 도모하는 여야 의원들의 행태를 보고 두 사람 모두 환멸을 느낀다. 그리고 그날 밤, 그 둘은 서로에게 스르르 빠져든다.

 -사랑과 정치를 한꺼번에 소설로 풀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정치권의 이분법적 풍경을 효과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사랑 얘기가 필요했다. 이 소설이 사랑과 인생에 대한 희극적 교본이 되길 바랐다.”

 소설은 과감하고 유쾌하다. 그 과감함은 정치권을 비꼴 때 빛나고, 그 유쾌함은 두 사람의 연애담이 흘러갈 때 반짝인다. 실제 소설은 온갖 사랑의 꼴로 넘쳐난다. 모든 등장인물이 어떤 식으로든 사랑으로 연결돼 있다.

 게다가 니체·토머스 모어·쇼펜하우어·이상 등 동서양 지식인의 사랑 담론이 인용된다. 정치사랑학 개론서랄까. “아나운서 되려면 다 줘야 된다”며 인턴 직원을 성추행 하는 국회의원 등 실제 정치권 풍경을 끌어온 듯한 장면은 소설에 생동감을 더한다.

 소설은 김수영이 대정부 질문을 통해 오소영에게 프러포즈 하는 장면에서 정점에 이른다.

 ▶김수영=총리, 서로가 완전히 다른 진짜일 때 그 남녀는 서로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총리=적어도 가짜 동지들끼리 사랑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습니다.

 ▶김수영=그럼 진짜 새한국당 의원과 진짜 진보노동당 의원이 진짜 적수가 되어 사랑하는 것도 가능하겠군요.

 김수영은 사랑을 통해 국회의원의 소명의식을 깨닫는 데까지 나아간다. 비판의 날이 선 판타지다.

 -저런 정치인이 존재할 수 있나.

 “판타지 맞다. 그런데 다 같이 한번 물어보자는 거다. 김수영도 오소영도 괴로워할 줄 아는 정치인이다. 사랑이라는 질문을 해결해가면서 자의식이 더 명확해졌다. 우리 정치권도 자의식에 좀 시달려야 한다. 도대체 너무 뻔뻔하다. 사랑이란 숙제가 없다면 인간은 빛을 잃고 시들 것이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이처럼『내 연애의 모든 것』에는 사랑과 정치에 대해 품을 만한 물음이 빼곡히 담겨있다. 총선·대선을 앞둔 정치인, 나아가 유권자에 대한 반듯한 질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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