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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 인사이트 ] 삼성·애플 특허전쟁 걱정 마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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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김창우
IT팀장

1571년 그리스 레판토에서 베네치아 중심의 유럽 연합함대는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해군을 격멸했다. 당시 ‘아드리아해의 여왕’이라 불리던 베네치아는 적지 않은 피를 흘린 끝에 지중해의 제해권을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15세기 초부터 이어진 ‘대항해(大航海) 시대’가 무르익으며 무역의 중심 항로 자체가 유럽과 신대륙을 잇는 대서양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 애플이 삼성전자를 고소하면서 특허 싸움이 시작됐다. 삼성이 맞대응에 나서면서 두 회사는 현재 10여 개국에서 30여 건의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른바 ‘대고소(大告訴) 시대’다. 교역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바뀌며 칼레 해전이 일어났듯이 이동통신도 세대가 바뀔 때마다 갈등을 피할 수 없다. 3세대(3G)에서 4세대(4G)로 전환될 무렵 삼성과 애플의 전쟁이 시작된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2G에서 3G로의 전환기인 2007년에도 그랬다. 당시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노키아는 2G CDMA 원천기술을 갖고 있던 퀄컴이 특허권을 남용한다고 공격했다. 두 회사는 1년여간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2G 시절 5%대이던 기술사용료(로열티)를 3G WCDMA에서는 2%대로 낮추는 선에서 타협했다.

 이처럼 정보기술(IT) 업계에서 법정 공방은 일상다반사다. 지금까지 애플은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열린 가처분 소송에서 판매금지를 이끌어냈지만 삼성은 관련 디자인과 소프트웨어를 고쳐 우회했다. 애플은 삼성이 휘두르는 펀치를 프랜드를 앞세워 회피하고 있다. ‘특허공룡’을 견제하기 위한 프랜드 조항을 시가총액 세계 1위를 다투는 애플이 잘 써먹고 있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칼레에서 프랜시스 드레이크 제독이 맹활약한 영국은 스페인의 무적함대 ‘아르마다’를 격파하고 향후 300년간 세계를 지배했다. 하지만 특허 법정에서는 이처럼 한쪽에 치명적인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 합의까지의 길고 지루한 공방이 이어질 뿐이다. 2G 시절 퀄컴에 1조5000억원 이상의 로열티를 지급했던 우리나라다. 외국 회사에 “돈 내놓으라”며 싸우는 것 자체가 낯설지만 즐거운 일 아닌가. 마침 4G LTE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특허 가치가 ‘톱 5’ 안에 든다는 평가도 들린다. 대하드라마 ‘대고소 시대’는 편한 마음으로 관전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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