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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영아 여론 女論

떠나 온 ‘동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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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1901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소설가 최서해(崔曙海)는 궁핍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1918년부터 5년간 간도로 이주해 살아 본 경험이 있었다. 조선인들이 간도 등 만주 지역으로 이주를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엽이었고 본격적인 이주 시기는 1920년대부터였다. 이주의 원인은 대부분 가난이었다. 일제의 토지조사 사업 등으로 조직적인 경제 수탈을 받게 되면서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조선인들이 아직은 희망이 남아 있는 미개척의 땅 만주로 떠났다.

 그러나 희망의 땅일 줄 알았던 간도에서 그들은 더더욱 비참한 현실을 맞닥뜨렸다. 일본의 영향력이 확대되기 이전인 1920년대에는 특히 중국인들의 조선인 이주민들에 대한 인권 유린이 극심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최서해는 자신처럼 고향을 떠나 온 조선인들의 비극적 삶을 보고 겪었고, 이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소설들을 창작했다.

 ‘폭풍우시대’도 그런 소설 중 하나다. 이 소설의 화자인 ‘나’는 자신이 간도에서 보았던 ‘우리 동포의 슬픈 이야기를 우리 동포의 앞에 드리겠습니다’라고 작품의 서두에서 취지를 말한다. 자신처럼 처지와 환경 때문에 ‘고토를 버리고 낯선 산천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슬픈 사정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주민들의 비극적인 운명과 절규 섞인 외침이 곳곳에 드러난다. 간도로 이주한 조선인들의 지도자 역할을 했던 ‘조병구’라는 인물은 다음과 같은 구절을 통해 떠나 온 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에 ‘동포’ 모두가 힘써야 함을 역설한다.

 “우리는 여러 동포의 뜨거운 사랑을 바랍니다. (…)우리 처지는 더 말씀치 않으셔도 여러분은 잘 아실 줄 믿습니다. 고토(故土)를 버리고 남부여대로 강을 건너는 동포나, 그렇지 않은 동포나 다 함께 매서운 폭풍우 속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도 사람이외다. 우리도 눈, 코가 바로 박힌 사람이건만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사람의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도 사람의 권리와 의무를 가져야 하겠습니다.”(최서해, ‘폭풍우시대’, ‘동아일보’ 1928년 4월 11~12일)

 최근 중국의 탈북자들에 대한 강제 북송 문제로 한국과 중국 간의 외교적 마찰을 빚고 있다. 국내 탈북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탈북자 강제 북송에 반대하는 시위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중국이 난민협약 가입국임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각별한’ 관계 때문에 이러한 비인도주의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은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다. 정치, 외교, 이념을 떠나 그들이 고향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상황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