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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404> 명품과 스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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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서양의 고가 브랜드는 스타와 함께 성장했다. 스타들은 계층으로 보자면 일반인보다 씀씀이가 큰 명품 애호가다. 더 나아가 명품의 이미지를 자신에게 투영시켜 특별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명품 기업들은 스타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스타와 명품, 명품과 스타는 단순히 마케팅의 산물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의 관계는 현대 마케팅이 개발한 기법이라기보다는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전한 명품 산업의 특징이다.

프랑스 루이 14세, 유행 선도한 최초의 스타

지난달 1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슈즈 포 스타’에 초대된 영화배우 유지태(오른쪽)와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둘째딸인 조반나. ‘슈즈 포 스타’는 이탈리아 브랜드 ‘살바토레 페라가모’에서 세계적인 스타를 위해 맞춤 구두를 증정하는 행사다. [페라가모 제공]

현대 명품의 역사를 되짚을 때 시조로 언급되는 이는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다. 17세기 중반부터 프랑스를 지배한 루이 14세는 부르봉 왕가 절대왕정의 정점에 있던 인물이다. 강력한 왕권은 그가 누릴 수 있었던 최고의 유행과 사치를 가능케 했다. 이것이 현대 명품 역사의 기원으로 불리고 있다.

이때를 기점으로 프랑스는 유럽에서 문화와 멋을 대표하는 국가 이미지를 얻기 시작했다. 전 세계 유행의 흐름을 주도하는 패션의 나라가 됐다. 그가 기용한 재상 장바티스트 콜베르는 상업을 중시하며 프랑스 무역을 발전시킨 위대한 정치가로 평가된다. 오늘날 프랑스 명품업계의 최대 이익단체 이름이 그의 이름을 딴 ‘콜베르 위원회’인 것만 봐도 루이 14세 때 명품 산업의 기초가 마련됐음을 알 수 있다.

루이 14세는 스스로 유행의 창조자를 자임했다. 단신으로 알려진 그가 선호한 굽 높은 구두 ‘하이힐’은 현대 여성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의 지시로 탄생한 베르사유 궁전의 화려함은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프랑스=멋’임을 각인시키는 장소로 군림하고 있다.

첨단 유행을 스스로 즐기고 창조했던 루이 14세는 그를 따르는 귀족들에게 ‘왕의 스타일’을 동경하게 만들었다. 귀족들은 왕의 스타일을 따라 하며 대리만족을 느꼈다. 귀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의 스타일을 모방했다. 오늘날 명품과 스타의 관계처럼 ‘루이 14세가 이런 머리 스타일을 했다’든가, ‘루이 14세가 어떤 구두장인에게 새 하이힐을 주문했다’는 것은 늘 귀족사회의 화제가 됐다.

19세기 여성들 ‘공작부인 스타일’ 따라하기

명품의 유행은 루이 14세 시대, 최초의 ‘패션 신문’과 함께 더 폭넓게 번져 나갔다. 로안 드잔이 쓴 『스타일 나다』에선 당시의 패션 뉴스를 전한 최초의 매체로 ‘르 메르퀴르 갈랑’을 소개하고 있다. 드잔에 따르면 이 신문은 패션계 소식을 다루면서 “스타일이 점점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으므로 늘 최신 정보로 무장하고 있지 않으면 유행에 뒤처져 비웃음을 사기 십상”이라고 전했다. 또 “프랑스 사람들이 디자인하고 입는 옷에는 다른 옷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으며 그 느낌은 파리 디자이너들만 제대로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르 메르퀴르 갈랑’은 판화 형식으로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을 소개했는데, 판화 속 주인공은 ‘○○공작 부인’처럼 동경의 대상이 될 만한 인물이었다. 판화에선 이들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어떤 스타일을 추구했는지 자세하게 묘사했다. 또 이런 유행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특정 상점의 이름까지 자세하게 소개했다. 결국은 왕에서 귀족사회로 번진 유행은 왕이란 최고의 연예인과 그 뒤를 따르는 귀족에 의해 대중 속으로 널리 전파됐다.
 
스타 마케팅 본격적으로 시도한 페라가모

1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위베르 지방시가 디자인한 드레스를 입은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한 장면이다. [중앙 포토] 2 이탈리아 브랜드 ‘돌체&가바나’의 드레스를 입고 시상식에 참석한 영화배우 모니카 벨루치 [신세계 인터내셔날 제공] 3 이탈리아의 패션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만든 슈트를 입은 영화배우 톰 크루즈 [신세계 인터내셔날 제공] 4 파파라치가 찍은 영화 배우 제시카 알바. 프랑스 브랜드 ‘디오르’ 가방을 들었다. [크리스찬 디올 제공] 5 영화배우 이자벨라 로셀리니가 자신의 어머니 잉그리드 버그만을 추억하며 만든 ‘로셀리니 백’을 들고 있다. 이탈리아 브랜드 ‘불가리’에서 만든 제품이다. [불가리 제공]

시간이 흘러 귀족이나 왕보다는 은막의 주인공이 대중에게 더 각광받는 시대가 됐다. 1920년대 할리우드가 대표적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전 세계인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줬다. 스타들은 가장 화려한 패션으로 관객을 유혹했다. 스타의 스타일이 유행하는 데 힘을 보탠 최초의 장인은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의 살바토레 페라가모였다. 20년대 초,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앤젤레스(LA)에 구두점을 낸 그는 루돌프 발렌티노, 클라라 보, 존 배리모어 같은 당대의 스타를 위한 구두를 만들어 명성을 얻었다. 그는 자서전 『꿈을 꾸는 구두장이』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발렌티노는 비치우드 드라이브에 있는 우리 집에 들러 이탈리아식 스파게티를 먹고 가곤 했다. 그는 미남에다 항상 쾌활한 성격이었다. 완벽한 배우 존 배리모어는 우리 제화점에 와서 구두도 맞추고 술도 한잔씩 마시곤 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명품 브랜드와 스타의 밀월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다음 타자는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위베르 지방시였다. 지방시는 1953년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요청으로 영화 ‘사브리나’에서 주인공을 맡은 오드리 헵번의 드레스를 디자인했다. 이후 지방시는 ‘티파니에서 아침을’ ‘샤레이드’ 등 영화에서도 오드리 헵번이 입을 드레스를 디자인했다. 나중에 오드리 헵번은 지방시의 향수 광고 모델로도 활약했다. 덕분에 지방시는 프랑스에만 머물지 않고 미국에서도 명성을 얻은 국제적인 유명 디자이너가 됐다.

아르마니 입은 리처드 기어, 섹시한 남성 대명사로

1968년 이탈리아 브랜드 구찌가 LA에 매장을 냈다. 당시 구찌의 경영을 맡고 있던 알도 구치는 그레이스 켈리, 소피아 로렌, 존 웨인 등 유명 스타들을 고객으로 유치했다. 가수 프랭크 시내트라도 구찌의 단골 고객이 됐다. 구찌와 조르지오 아르마니, 랄프 로렌, 이브 생 로랑, 셀린느, 앙드레 쿠레주 등이 LA에 잇따라 매장을 열었다. 당대의 부호들은 스타들이 드나들며 쇼핑을 하는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데이나 토머스가 쓴 『럭셔리-그 유혹과 사치의 비밀』에는 당시 명품 상점이 몰려 있던 로데오 드라이브가 이렇게 묘사돼 있다.

“스타들은 아카데미 시상식 때 무엇을 입고 나가느냐는 문제로 몇 달 동안 고민했다. 그들에게 옷을 보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이 대목을 유추해 보면 당시만 해도 스타에게 명품 브랜드 혹은 유명 디자이너가 마케팅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협찬하는 관행이 요즘처럼 활발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 뉴욕의 유행을 이끌던 백화점 ‘바니스’의 소유주 프레드 프레스먼은 이탈리아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를 내세워 ‘스타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프레스먼은 아르마니를 설득해 1976년부터 바니스에서 독점적으로 그의 옷을 팔기 시작했다. 당시 아르마니의 고객은 영화감독 마틴 스코시즈와 영화사 컬럼비아 픽처스의 사장 돈 스틸, 영화 ‘탑건’의 제작자 돈 심슨,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 ‘그리스’로 스타가 된 존 트래볼타의 매니저 밥 르몽드 등이었다. 1979년 리처드 기어가 ‘아메리칸 지골로’에 출연하면서 입은 조르지오 아르마니 양복은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신인 배우였던 리처드 기어가 섹시한 남성의 대명사로 부상하면서 조르지오 아르마니도 미국인들이 선망하는 패션 디자이너로 각인됐다. 이후 아르마니는 1987년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영화 ‘언터처블’에서 1930년대 양복을 디자인하며 명성을 공고히 하기에 이른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할리우드와 스타, 명품의 관계를 깨닫고 자신의 회사에 연예계 담당 홍보이사까지 뒀다. 사회부 기자 출신의 완다 맥대니얼은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홍보이사를 맡아 스타들이 시상식 레드 카펫에 입을 드레스를 제안하는 역할을 했다. 그는 미셸 파이퍼, 제시카 탠디, 톰 크루즈, 덴젤 워싱턴, 데니스 호퍼, 빌리 크리스털 등 톱스타들을 섭외했다. 그 결과 당시 미국의 패션 전문 일간지 ‘위민스 웨어 데일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아르마니 시상식’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다이애나비가 들었던 디오르가방 10만개 팔려

스타를 활용한 명품 마케팅은 큰 효과를 거뒀다. 1995년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레이디 디오르’라는 이름의 가방을 든 모습이 파파라치에 의해 보도되면서 디오르는 개당 1000달러짜리 이 핸드백을 전 세계에서 10만 개나 팔게 됐다. 패션 잡지 ‘인스타일’의 발행인 마사 넬슨은 스타와 명품의 관계를 이렇게 정리했다.

“우리 잡지의 목표는 스타일을 이해시키는 것이다. 독자들은 모델이 입은 옷은 이해할 수 없지만 유명 스타가 입은 옷은 이해할 수 있다.”

스타가 모델보다 일반인들에게 더 강력한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모델들은 보통 사람들에게 친숙하지도 않고 쉽게 접할 수 없지만 유명 스타는 매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유명 스타는 영화뿐 아니라 TV에서도 볼 수 있다. 가수라면 콘서트나 방송을 통해 충분히 그들의 스타일을 보고 즐길 수 있단 얘기다. ‘인스타일’ 발행인 넬슨은 “유명 스타들은 일반인들의 생활과 일반인들의 거실에 존재한다. 그들은 그다지 신비스럽지 않다”고 표현했다. 명품 마케팅의 대가인 장노엘 카페레 프랑스 경영대학원 HEC 교수는 자신의 저서 『명품 전략』에서 스타를 브랜드 홍보대사로 삼는 것에 대해 “즉각적인 판매 증대보다는 스타의 명성을 브랜드에 입혀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대중에겐 스타의 가치가 명품의 가치와 동일시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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