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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빛깔] 천안시민문화여성회관 컴퓨터반 오순희 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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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교육하다 큰 딸 아이가 6개월이 될 무렵 여성회관과 인연을 맺었어요. 시간을 쪼개어 육아에도 전념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서였죠. 그때의 선택으로 16년 동안 한 가지 일에 매진할 수 있었고 단 한번도 후회는 없었어요.” 십년을 훌쩍 넘긴 세월을 오롯이 한 길만 걸어온 사람. 오랜 시간 천안지역의 수많은 여성들에게 ‘컴퓨터 세상’이라는 21세기의 문명을 경험하게 해 준 천안시시민문화여성회관(이하 여성회관) 컴퓨터반 오순희(46) 강사가 그 주인공이다.

컴퓨터 배우고 싶다면 노크하세요

천안시민문화여성회관 컴퓨터반 오순희 강사가 수강생에게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다. [사진=조영회 기자]

지난 29일 여성회관 컴퓨터실에서 만난 오순희 강사는 동절기 컴퓨터기초반 수강생들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컴퓨터가 대중화돼 기초반이나 자격증반 수강 신청이 시들해질 법도 한데 배우고자 하는 열망은 여전해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수강생들로부터 ‘컴퓨터를 잘하는 자체만으로 존경의 대상이다’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는 오 강사는 흔히 말하는 컴맹에서 그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예전보다는 컴퓨터에 대한 신비감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지식을 전달할 대상이 무궁무진 한 것 같아요. 수강생들을 만날 때마다 취미나 기술을 지도한다는 생각보다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해요”

 때로는 ‘어려워서 못하겠다’며 배움을 포기하려는 수강생도 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온갖 감언이설을 쏟아내 설득한다는 그는 “배움의 열정이 깊은 분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저는 더욱 신명나게 지도를 하게 돼요. 인터넷은 대중화가 됐잖아요. 하지만 엑셀·파워포인트·한글 등 프로그램 분야는 40대들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모르는 것을 아예 방치하고 도전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아쉬운 부분이죠”

기초 튼튼하면 생활 속 활용 높아요

자격증을 취득한 후 취업에 성공했다고 해서 일부러 연락하는 사람은 없지만 시내 곳곳에서 오 강사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많다. 문화센터, 중소기업, 부동산 등 그에게 컴퓨터 지식을 습득한 여성들이 지역 내 곳곳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회관은 전문가를 배출해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저변확대가 목적이므로 여기서 배운 지식만으로 전문직은 사실 힘들어요. 하지만 사무실이나 개인 사업을 하는 분들에게는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분은 출근 하루 전날 찾아와 모두 잊어 버렸다며 다시 알려 달라고 해 1대1 수업을 한 적도 있어요. 그런 마음가짐이면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이룰 거라고 믿어요.”

 컴퓨터 기초·한글·윈도우·인터넷·엑셀·파워포인트·엑셀을 이용한 PC활용능력반(기초반). 이 모든 과목을 여성회관에서 배울 수 있다. 오 강사는 현재 컴퓨터 기초반을 중심으로 교육 중이다. “초급반은 다른 반에 비해 속도 조절을 해야 해요. 수강생의 연령대가 20~70대까지 다양하기 때문이에요. 중도하차 하지 않도록 힘들어도 참고 견디라고 용기를 주곤 합니다” 한 단계 한 단계 서로 격려하며 문제를 극복하고, 서로에게 힘이 돼 주며 발전해 나가는 초급반이 좋다는 그는 “초급반은 중급반처럼 학구적인 분위기는 없지만 인간적인 정은 많은 반이에요. 저로서는 지식도 전달하고 생활의 지혜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에요” 오 강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사람들 만나며 배운 것이 더 많아요

두정동 극동아파트에 사는 60대 초반의 이덕순씨는 “천안에 이사와 외로웠었지. 그러다 여성회관을 알게 돼 컴퓨터를 배우게 됐어. 요즘은 블로그에 사진도 올리고 글도 쓰고 음악도 들을 수 있어 새로운 세상을 만난 기분이야”라며 만족해 했다.

 스리랑카에서 온 영어 강사 윈디아(47·신방동)씨는 10년 전 오 강사를 만난 후 컴퓨터 박사가 됐다. 자녀들이 싱가폴에 있는 이유로 컴퓨터를 켜 놓고 산다는 윈디아는 “처음엔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했어요. 이렇게 어려운 것을 어떻게 배우나 싶었어요. 하지만 꼭 필요했기에 하루 24시간 컴퓨터를 붙들고 살다시피 했어요. 지금은 한국말도 잘하고 컴퓨터로 아이들과 영상통화도 하고 영어 교제를 만들기도 해요”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컴퓨터 덕분에 갱년기 우울증을 잊었다는 수강생, 남편 사무실에서 업무처리를 척척 해낸다는 수강생도 있다.

반면 ‘다 늙어서 컴퓨터는 배워 어디에 쓸고…’하는 수강생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오 강사는 컴퓨터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중도에 포기하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우며 지도한다고 말한다.

“‘지식 전달만 하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일을 했다면 삭막하고 재미가 없었을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여러 사람들과 만나 도리어 배운 것이 더 많았다고 생각해요. 한번 발을 디딘 분들이 완성된 능력을 갖춰 수료할 수 있도록 앞으로 더 노력할 거예요” 컴퓨터를 켜며 시작하는 오 강사의 하루는 매일매일 즐거움의 연속이다.

▶문의=010-4330-9708

글=이경민 객원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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