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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익 족집게’ 해커스, 비결은 문제 빼돌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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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국내 어학교육 분야의 선두업체인 해커스그룹의 연구원 A씨(35·여)는 2008년 한 달에 한 번씩 텝스 시험을 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시험장에 가 시험을 본 뒤 문제를 그대로 복원하라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작성한 ‘시험업무 매뉴얼’ ‘후기작성 매뉴얼’ ‘녹음·녹화 지침’ 등에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A씨를 포함해 동료 연구원 20여 명에게는 독해 분야를 맡겼고 마케팅팀 직원들에겐 리스닝 분야를 맡겼다. 조직적으로 분업한 셈이다.

 해커스 연구원들은 시험장에서 각자 자신이 맡은 부분의 문제를 암기한 뒤 시험이 끝나자마자 가까운 PC방 등으로 달려갔다. 문제와 답을 작성해 시험 총괄 책임자에게 파일을 전송했다. 마케팅팀 직원들은 초소형 녹음기를 받아 시험장에서 리스닝 문제를 녹음한 뒤 녹음 파일을 역시 시험 총괄 책임자에게 전송했다. 이들이 보내온 시험문제와 답은 외국인 연구원들의 검토를 거쳐 어학원 게시판에 올려졌다. 이 모든 과정이 3시간 만에 이뤄졌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김영종)는 6일 시험문제를 조직적으로 유출한 뒤 학원 게시판에 올리고 강의·교재 자료로 사용한 혐의(저작권법 위반 등)로 해커스교육그룹 조모(53) 회장과 본부장 등 2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직원 4명은 약식기소했다. 해커스어학원, 해커스어학연구소 등 법인 두 곳은 약식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조 회장 등은 2007년 10월부터 올해 초까지 회사의 연구원과 직원 50여 명을 동원해 토익의 경우 49차례, 텝스는 57차례에 걸쳐 시험문제를 유출했다. 해커스 그룹은 이런 식으로 불법 유출한 문제를 활용해 2010년 1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고 360억원의 당기 순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 회장은 그룹 주식 100%를 소유하고 있다. 그는 2001년부터 국내의 한 국립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해커스 그룹을 몰래 운영하기도 했다. 공무원의 영리업무 및 겸직 금지 규정도 위반한 것이다.

 검찰은 “그룹 측이 불법 유출된 문제를 학생들에게 제공한 것은 어학원의 명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토익 시험 주관사인 미국의 ETS는 문제 유출 소문을 접하고 검찰에 수사를 요청한 것은 물론 한국 수험생의 영어 실력에 의문을 품고 한국인을 위한 특별시험 문제까지 개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해커스 그룹은 또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최근 개발한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 문제 유출에도 손을 댄 것으로 조사됐다. 교과부에서 2016년부터 수능 외국어영역을 NEAT로 대체할지 논의 중이고, 경찰청도 2014년부터 순경 공채 영어시험을 NEAT 성적으로 대체할 계획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터넷 기반 시험인 NEAT 모의고사 문제를 유출하기 위해 마이크로렌즈를 장착한 만년필형 카메라와 해외에서 구입한 특수녹음기를 동원했다. 녹음기를 변형해 헤드폰과 귀 사이에 끼워 쓸 수 있도록 만들어 연구원과 직원들에게 이를 지급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해커스 측은 “기출문제의 복기는 출제경향을 파악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며 “교재는 모두 새롭게 창작된 문제를 수록한 것인 만큼 저작권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해커스 측은 또 “이번 수사는 이미 출제된 영어시험 문제에 대한 정보 독점을 정당화해 수험생의 알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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