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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한 임직원 벌 줘야지 왜 기업 제재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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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파장이 너무 크다. 하지만 제도 완화는 증시 투명성에 역행하는 거라 안 된다. 보완? 필요하다. 방법은 솔직히 모르겠다.”

 ㈜한화가 자기자본의 3.88%에 해당하는 899억원의 배임 혐의로 한국거래소의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증권가 안팎에서 나온 반응이다. 코스닥 기업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4월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을 강화했다. 과거엔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경우 횡령·배임과 관련해 판결 금액이 자본 전액잠식이 돼야 상장폐지 심사 대상이 됐다. 그러나 지금은 검찰의 공소장에 적힌 횡령 액수가 자기자본의 2.5%(대기업군)가 넘으면 혐의만으로 곧바로 매매거래가 정지되는 동시에 상폐 심사 대상 여부를 가리게 됐다. 거래소 측은 “횡령·배임 혐의만으로 매매거래를 정지하도록 바꾼 이유는 투자자에게 기업에 관해 정확히 알리는 공시적 성격이 크다”며 “횡령 사실만으로 곧바로 상장폐지로 이어지는 건 아닌 만큼 큰 문제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다르게 받아들인다. 거래정지가 곧바로 피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최현도(32·직장인)씨는 “잘못을 저지른 오너나 임직원에게 벌을 줘야지 기업에 제재를 가하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이상균(57·퇴직자)씨도 “아내가 ‘한화 주식 다 휴지조각 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길래 호들갑 떨지 말라고 했지만 솔직히 나도 불안하다”며 “대기업 주식이 이 정도라면 다른 주식은 볼 것도 없을 것 같아 이참에 아예 주식 투자에서 손 뗄 생각”이라고 말했다.

 코스닥시장 상장폐지 실질심사위원으로 활동했던 한 위원은 “코스닥 기업은 이 제도를 통해 많이 퇴출됐다”며 “퇴출될 만한 기업이었기 때문에 전체 코스닥시장의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회사를 제대로 경영하겠다기보다 ‘떡고물’에 더 관심이 많았던 대주주의 전횡을 투자자에게 알려 개인투자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기업을 솎아내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대기업에 적용하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며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연구원 이인영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문제 기업에 법에 맞는 처벌을 내리면서 투자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무죄추정 원칙이 기본인데 혐의만으로 징벌적 조치를 취하는 게 맞느냐”는 원론적인 문제부터 “검찰 공소장에 나온 금액으로 횡령·배임액을 산출하는 게 맞느냐”는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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