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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대욱이형 인환이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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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신승철
큰사랑노인전문병원장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언젠가 어디서 많이 보았던 구절들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이었을 게다. 이런 표어들은 우리 집 방 안의 허름한 벽 위에도 붙어 있었다. 아마 우리 집에서 하숙을 하던 대욱이형이나 인환이형이 붙여 놓았지 싶다.

 1960년대 초. 한국전쟁을 겪은 피란민들이 점차 안정을 찾기 시작했을 그 무렵, 모든 부모의 염원은 가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것이었다. 해서 부모들은 무엇보다 먼저 자식 공부에 온갖 정성을 쏟아야 했다. 자식들이 공부를 잘해 나중에 출세라도 하면, 내심 노후에 그 덕도 볼 수 있으려니와 주변에 그런 자식 자랑 늘어놓는 게 적잖은 보람으로도 여겨졌을 터였다.

 하나 무슨 요령이 있었겠나. 어려운 형편임에도 부모들은 앞뒤 따지지 않고 소 팔고, 땅 팔아 자식 대학 등록금을 대기에 주름살이 깊어만 갔다. 어린 나이에 나는 곁에서 어른들의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공부를 잘하는 자식을 둔 아버지들의 근심 속엔 은근히 자부심 같은 것이 내비쳐짐도 느꼈다.

 두 형의 부모인들 그 속사정이 어찌 다를 수 있었겠는가. 역시 저러한 부모의 속마음을 가슴 시리게 알고 있던 형들은 고달픈 타향살이에, 고학(苦學)인이요, 과외도 모르는 고학(孤學)인일 수밖에 없었다. 형들은 자연히 내핍 생활에 달관해야 했고 무슨 일이건 묵묵히 기다리고, 소리 없이 인내해야 하는 법을 체득할 수밖에 없었다. 함께 지내다 보니 그런 정서에 나도 얼마간 동화된 듯싶다. 그 무렵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한자말을 인환이형이 풀이해 줘 어렴풋이나마 그 정서를 알아들었던 기억이 있다. 또 정복자 나폴레옹이 내지른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미숙한 자아에게 강한 자기 암시로 간혹 위로를 줬을 법도 했다.

 그 후 떨어져 살면서, 나는 어머니에게서 간간이 형들의 소식을 전해 들었을 뿐이다. 이제 두 분 다 칠순을 바라본다. 재작년인가, 나는 대욱이형 딸의 결혼에 주례를 서 준 적이 있다. 형은 손자를 서너 명까지 둔 어엿한 할아버지인데, 얼굴을 보면 옛 청년 시절의 풋풋하고 순박한 모습 그대로다. 만날 때의 정서도 옛날 그대로여서 도무지 할아버지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인환이형이야 좀 늙수그레한 인상이지만 원래 젊어서부터 애늙은이로 보였기에 아직도 나이에 비해 그리 늙어 보이는 편은 아니다.

 형들의 부모는 자식들에 대해 고진감래의 마음만 갖고 고생만 하며 살았으나 이미 유명을 달리한 지 오래. 어느새 형들은 그 부모의 나이에 이르고 만 것이다. 우리의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그러했고, 우리의 아버지의 아버지들의 삶이 다 그러했을 것이다. 하나 생전엔 모두 나름대로 희망의 꽃을 피우려는, 남모르는 꿈도 가졌을 것이다.

 한국의 부모들은 인류학자 M 미드가 지적했듯, 같은 혈통의 자식을 통해 영원히 살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갖고 있었는지 모른다. 망자를 위한 제사(祭祀)는 살아 있는 자식을 통해 음식과 제의를 받는 일이다. 이는 곧 부모-자식이 영원히 공생할 수 있음을 뜻하는 행동 아닌가. 문화적 유전체일 것이다. 그러나 형들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그런 유전인자 외에 다른 형질의 유전인자도 지닌 듯하다. 어려웠던 지난 하숙 시절 내 어머니가 잘 보살펴 준 그 은덕을 잊지 않은 이유도 있어서일 게다. 하지만 근 50년 가까이 명절 때는 물론 내 어머니의 생신까지 꼬박 잊지 않고, 무슨 때가 되면 당신들의 자녀들과 손자들까지 데려와 인사를 드리게 하고, 수시로 어머니에게 용돈까지 챙겨드린다.

 “이 오랜 정(情)과 성(誠)을 어찌 말해야 좋은가.” 어머니는 가끔 한탄조로 혼자 그렇게 중얼거리신다. 곁의 나는 목석처럼 할 말이 없다. 형들을 보면 나는 그간에 정신적으로 너무 사치스러웠다는 생각에 민망함이 앞서고… 형들을 생각하면 옛 글귀처럼 ‘인자무적(仁者無敵)’이란 말이 실감도 나고… 형들이 그저 갸륵하고, 고맙기만 합니다.

신승철 큰사랑노인전문병원장